“음악은 평생 친구...제 연주 매일매일 업그레이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28일 ‘위너스 콘서트’ 개최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1. 피아니스트 이혁 “죽는 날까지 공부할 것...상에 연연하지 않아”
“이번 우승으로 많은 연주 기회를 얻게 돼 기뻐요. 하지만 음악가로서의 삶이 달라지는 건 없어요. 상에 연연하지 않아요. 콩쿠르는 하나의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죠. 준비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다양한 음악을 통해 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죠.”
피아니스트 이혁(22)은 지난달 프랑스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일본 연주자 마사야 카메이와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 연주자로는 2001년 임동혁 이후 21년 만의 우승이다. 롱 티보 콩쿠르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그리트 롱과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가 1943년 창설한 대회로 세계 10대 콩쿠르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2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팬들을 만난다. 올해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함께 ‘더 위너스(The Winners)’ 콘서트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오른다. 이병욱이 지휘하는 디토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다.
26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음악가로서 꿈은 딱 하나다. 죽는 날까지 피아노를 공부하고 싶다”라며 “평생 음악을 친구처럼 삼아 배워나갈 것이다. 연주를 매일매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굳은 결의를 밝혔다.
그러면서 “어느날엔 1등, 다음날엔 2등을 하든 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상을 탔다고 음악가의 삶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청중들과 음악을 함께 나누는 건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다. 늘 같은 마음으로 한 무대 한 무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혁은 이번 콘서트에서 롱티보 콩쿠르 결선 때 연주했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준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곡 중 하나다”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프로코피예프는 피아노 협주곡을 5개 남겼는데, 2번 외의 다른 네 곡이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역동적이고 해학적인 분위기라면 2번은 매우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하죠. 프로코피예프의 인생이 어둡던 시기에 작곡된 곡이어서 그런지 다른 협주곡들과 많이 달라요. 이런 대작을 국내 팬들께 선보일 기회가 생겨서 정말 기뻐요. 열 손가락으로 최대한 그 느낌을 청중들에게 전달할게요.”
그는 내년에 롱티보 콩쿠르 우승의 부상으로 주어지는 유럽 연주 일정을 분주히 소화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노앙 쇼팽 페스티벌 등 여러 축제를 비롯해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지낸 마에스트로 안토니 비트와의 협연도 준비돼 있다. 또 9월엔 금호아트홀 독주회가 예정돼 있고, 동생인 이효(15)와 피아노 듀오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내년엔 피아노를 하는 동생과 함께 듀오 콘서트도 기획 중이에요. 제 동생이 그 나이 때 저보다 피아노를 더 잘 치는 것 같아요. 동생이 음악가로서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합니다.”
그는 롤모델로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꼽았다. “음악을 대하는 자세를 존경해요. 연세가 많았을 때 연주한 영상도 많이 봤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죠. 음악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열정을 한결같이 지닌 그 모습을 꼭 닮고 싶어요.”
#2. 체스 선수 이혁 “한국인 첫 그랜드마스터 야심...체력에 큰 도움”
“체스의 그랜드마스터가 꼭 되고 싶어요. 하하.” 이혁은 다재다능하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수준급 체스 실력도 갖추고 있다. 지금은 국제 대회에도 출전할 정도다. 최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 체스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다.
체스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취미 이상이다”라면서 “한국 체스계에 아직 그랜드마스터가 없는데 꼭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는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제외하고 국제 체스 연맹이 부여하는 체스 선수의 최상위 칭호다.
“음악에 도움이 되는 점이 굉장히 많아요. 집중해서 4시간 게임을 하다 보면 체력에도 도움이 되고요. 무엇보다 체스는 매우 논리적인 게임인데 음악도 논리가 없으면 제대로 연주하기 어렵죠. 프로코피예프, 오이스트라흐 등 20세기의 많은 훌륭한 음악가 중에도 체스를 즐기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타악기 등 새로운 악기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세 살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함께 시작했는데 현재도 바이올린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지금은 멘델스존,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꿈도 언젠가 펼쳐보고 싶다”고 밝혔다. 다방면으로 호기심이 넘쳤던 그는 멀티 플레이어의 삶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3. 음악자선 이혁 “사회에 보탬 되고 싶어...사회공헌 콘서트 계속할 것”
이혁은 음악을 통한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 20일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팬들과 함께 기획한 ‘기부콘서트 Op.1’을 개최했다. 2012년부터 자신을 후원해 준 두산연강재단에 감사를 전하고 이제는 나눔을 실천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공연이다. 수익금은 중앙대학교병원에서 치료받는 저소득층 소아청소년 환우들을 위해 기부했다.
올 5월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자선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거주하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공연수익금을 병원에 기부하는 등 자선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제가 잘하는 음악으로 개인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이런 자선 음악회를 앞으로 계속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유학해 모스크바 명문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주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자 프랑스의 에콜 노르말 음악원으로 옮겨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 음악은 예전부터 집중해서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본토에서 깊이 파고들 수 있게 됐죠. 모스크바는 제 10대를 거의 보낸 도시에요. 전쟁이 나면서 급하게 이주했는데 정들었던 도시와 선생님,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나와야 해서 아쉽고 슬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