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8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자로부터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부산 소재 중소기업 '동아플레이팅'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지난해 11월 8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자로부터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부산 소재 중소기업 '동아플레이팅'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회장님이 회장 호칭을 거부하고 있다. 수년전부터 수평적 조직문화 만들기의 일환으로 이어져 온 ‘수직적 호칭 파괴’의 연장선상이다.

8일 재계에 따르면, 회장님 호칭이 변화의 기로에 선 모양새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전자를 이끄는 이재용 회장이 다른 호칭으로 불리는 상황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 경영진과 임원에 대한 호칭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기존과 같은 직책과 직급을 이용한 수직적인 호칭을 금지했다. 임직원들은 타운홀 미팅이나 사내 회의, 간담회, 메일·메신저 등에서 수평적인 호칭을 사용한다. 이재용 회장은 이제 회사에서 ‘JY님’이나 ‘재용님’ 등으로 불린다.

삼성전자의 유연한 조직문화 구축은 예고된 행보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6월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좋은 사람 모셔오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지난해 4월 사내 소통행사에서 “조직문화는 수평적 문화가 기본 근간이고, 수평적 문화의 근간에는 상호존중이 있다”며 “부회장님, 대표님 하지 말고 저를 ‘JH’라고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사내 호칭의 변화는 재계에서 낯선 움직임은 아니다. CJ그룹은 지난 2000년 ‘님’ 호칭 제도를 재계에서 처음 도입했다. 지금도 이재현 CJ 회장은 회사에서 ‘이재현님’이라고 불린다.

이후 주요 기업에서는 ‘호칭 파괴’가 시작됐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호칭은 옛말이 돼가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등 전통적인 보수적 조직문화의 대기업들은 혁신의 바람을 타고 ‘매니저님’, ‘프로님’, ‘책임님’, ‘수석님‘, 리더님’ 등 과거엔 듣도 보도 못한 직함들을 우후죽순 도입했다.

네이버, 카카오, 토스뱅크는 아예 창업 초기부터 기존에 쓰이던 호칭의 사용을 거부했다. 영어이름을 쓰거나 ‘OO님’ 등으로 호칭한다. 신입사원들이 입사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영어 이름 만들기일 정도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브라이언’이라고 불린다. 카카오 관계자는 “창업 때부터 이뤄진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이름에 ‘님’자를 붙이거나 영어이름 또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SK이노베이션은 직급체계를 사원-대리-과장-부장에서 ‘PM’(프로페셔널 매니저)으로 통일했다.

호칭의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수평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상하관계의 벽을 허물자는 취지는 동일하다.

반면 호칭 변경을 시작했다가 원복한 기업도 있다. KT와 해태제과 등은 실제 업무방식에서의 변화는 미비했다며 다시 원래 직급으로 돌아갔다. 한 관계자는 “업무 책임이 명확하지 않고, 다른 회사와 업무 교류를 할 때 호칭에 따른 혼선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들었다”며 실패담을 전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공격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기업과 정보 유출 위험이 큰 회사가 동일한 조직문화를 구축할 순 없을 것”이라며 “업종에 맞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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