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금 지급액 지난해 사상 최대...정무위 문턱 못넘고 번번이 좌절
[데일리한국 박재찬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체면을 구겼다. 지난해 금감원 첫 검사 출신 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보험사기와 전쟁’을 선포하며 백내장, 홀인원 등 다양한 보험사기를 정조준했다. 하지만 지난해 실손의료보험 지급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금감원장의 ‘보험사기 전쟁’을 무색하게 했다.
또 이 원장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하 보험사기방지법) 개정안의 올해 상반기 입법화를 위해 정무위원회 위원들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특별법 국회 통과에 대한 보험업계의 기대는 높아졌지만 지난달과 이달 열린 법안심사에서 보험사기방지법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9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열어 보험사기방지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보훈 관련 법률안 등에 밀려 논의되지 못했다.
지난해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10조 9335억원으로 전년 동기 10조5959억원 대비 3.2%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년 연속 10조원을 돌파한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3년 전인 2019년 8조7531억원보다는 24.9%, 2020년 9조4790억원보다 15.3% 늘었다.
지난해 실손보험금 지급액 중에는 도수치료가 1조1430억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주로 치료사가 손으로 환자의 관절·인대·근육 등을 잡아주는 도수치료는 지급액이 2019년 7926억원에서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3년간 44% 급증했다. 다음으로 백내장이 7082억원 지급됐다.
같은 기간 영양제·비타민제 등을 포함한 비급여 약제 부문에서도 지급액은 4104억원으로 전년 3498억원 대비 17.3% 많아졌다. 또 피부과에서 피부건조증·화상 치료에 쓰이는 ‘MD(메디컬 디바이스) 크림’ 등 치료 재료 부문도 1년 만에 보험금 지급이 26.4% 늘었다.
여기에 일부 신기술 수술에서도 실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보험금 지급이 10% 증가한 ‘맘모톰 절제술’은 아주 작은 절개창을 통해 유방 종양을 곧바로 제거하는 시술인데, 수술할 때마다 보험금이 지급되는 점을 노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수술을 여러 차례 나눠 했다고 의심되고 있다.
금감원 최초의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은 취임과 함께 ‘불공정거래 근절’을 언급하며, 보험사기 단속의 칼날을 뽑았다. 이 원장은 지난해 10월까지 경찰과 함께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5년전 중단된 보험사기 범정부합동대책반 재가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원장의 ‘보험사기 전쟁’ 선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원장은 보험사 CEO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컨트롤타워를 설치한다거나 환급과 관련된 근거 규정을 둔다거나 하는 등 정무위원 간 이견이 적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견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반기라도 입법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 정무위원을 설득하고 있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보험사기 전쟁’을 선포한 이 원장은 체면을 구겼다. 그의 보험사기 억제에 대한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오히려 늘어났다. 또 이 원장의 보험사기방지법에 대해 발언으로 보험업계의 기대가 높아졌지만, 정무위의 무관심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기방지법은 2016년 제정 이후 7년 동안 개정되지 않고 있다. 특히, 매번 정무위 법안 소위 안건으로는 상정되고 있지만 번번히 다른 안건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보험사기방지법 개정안은 경찰청 등의 보험사기 직접 수사를 위한 컨트롤타워 마련을 통해 보험사기의 부당 보험금 환수, 금융위원회 자료 요청 권한 부여, 보험사기 가담 설계사들의 자격을 즉각 중단하거나 가중 처벌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보험사기가 전문화·조직화 되고 있고, 수법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보험사기방지법으로는 최근 발생하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회의 특별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험사기는 보험금 누수로 이어지고, 이는 선량한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 인상 등에 피해를 전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 대응력 강화 및 특별법 실효성 제고를 위해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 필요하다”며 “보험사기로 인한 부당 누수 보험금을 방지해 공·민영보험 재정 건정성을 도모하고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