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2제강공장 주변도로 복구전(위)과 복구후의 모습. 사진=포스코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2제강공장 주변도로 복구전(위)과 복구후의 모습. 사진=포스코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해 9월6일 이후 포스코의 최대 화두는 ‘비’다. 슈퍼 태풍 ‘힌남노’가 포항에 거센 비를 뿌려 ‘포스코의 심장’으로 불리는 포항제철소가 멈춘 초유의 사태가 발단이다. 포스코와 포항제철소로선 악몽 같았을 시간, 어느새 200일이 훌쩍 흘렀다.

우리나라 조강 생산량의 35%를 차지하는 포항제철소는 얼마나 정상화 됐을까. 올 여름도 힌남노 못지않은 태풍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지난 23일 포항제철소로 향하던 중 거짓말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우산을 쓰지 않으면 외투를 흠뻑 적실 정도로 내렸다. 덕분에 바닥 곳곳에 자그마한 물웅덩이가 생겼고 이는 제철소 주변의 주요 배수시설을 관찰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하루 포항에 내린 비의 양은 38mm 가량이다. 지난해 제철소 침수의 주요 원인이었던 인근의 좁고 얕은 냉천은 범람은커녕 평소 건천(乾川)이라 불릴 만큼 수량이 적은 상황 그대로 그저 잠잠할 뿐이었다. 공장 조업에 전혀 위협을 주지 못했다.

힌남노가 포항을 중심으로 한 부울경 지역에 상륙했을 당시 1일 강수량이 378mm 가량, 시간당 강수량이 100mm 가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슈퍼 태풍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비의 양은 아니겠지만 대규모 수해 피해 직후인 만큼 복구 과정에 있는 포항제철소가 매년 들이닥칠 태풍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어 보였다.

토사와 오폐수로 가득했던 제철소 내부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대략 620만톤으로 추산된 흙탕물이 언제 넘실거리기라도 했느냐고 묻는 듯 각 공장엔 바쁘게 돌아가는 각종 기계들로 인한 소음만 가득했다. 서울 여의도의 3배에 달하는 면적이 모두 물에 잠겼던 제철소는 직원들의 분주한 손놀림 속에 퀴퀴한 냄새와 습한 기운을 날린 지 오래였다. 전력 점검이 끝난 전기 설비와 모터에서 수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포항제철소 제2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 사진=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 사진=포스코

가장 눈길을 끌었던 시설은 제철소의 심장인 고로(용광로)다. 110m에 달하는 높은 탑이라는 이유로 고로(高爐)라고 불리는 용광로는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소의 핵심 시설이다. 포항제철소는 태풍 피해 직후 안전사고에 대비, 3개의 고로를 모두 휴풍(休風‧고로 정지)시킨 바 있다.

포항제철소 직원들은 휴풍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특히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 느낀 듯했다. 실제 물바다로 변한 당시 고로에 전원이 켜져 있었다면 비상대기 중이던 현장 직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고로에만 한정적으로 생각해보면 포항에 태풍이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나름의 대비 노하우를 갖춘 포스코의 휴풍이라는 선택이 ‘오버’일 수도 있었다. 만일 고로가 정지돼 쇳물이 완전히 굳을 경우 복구를 위해 조 단위의 비용과 수개월의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할 수도 있었기에 직원들에게서 볼멘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상 조업을 하다가 정전 등 피해를 당하면 더욱 복구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실제 골든타임인 7일 안에만 고로의 온도를 높이면 재가동은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포항제철소는 시설 전면 재점검을 통해 인명 피해를 막고 쇳물이 굳는 냉입(冷入) 발생도 사전에 방지했다.

스마트고로라고 불리는 제2고로의 중앙운전실에서 만난 최명석 공장장은 “고로가 정지되지 않았다면 폭발해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500도의 쇳물을 다루는 고로 3기는 휴풍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 지금은 24시간 펄펄 끓고 있다.

포스코 직원들이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에서 복구 작업에 한창인 모습. 사진=포스코
포스코 직원들이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에서 복구 작업에 한창인 모습. 사진=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 1월20일부터 완전 정상 조업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피해 발생 135일 만이다. “제철소를 다시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뒤로하고 모든 고로가 휴풍 6일 만에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자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낸 결과다. 불이 꺼졌던 전기강판‧냉연‧열연‧선재‧후판‧강편‧도금 등 압연지역 17개 공장에는 차례로 불빛이 들어왔다.

후판부 2후판공장의 이영철 과장은 “첫 슬라브가 추출돼 조압연기를 통과하는 순간 눈물이 나고 사람과 설비 할 것 없이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후판부 1후판공장의 이영춘 파트장은 “정상 가동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면서 “직원들의 저력을 믿었다”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열연부 2열연공장의 이현철 파트장은 “정상 복구 뒤 하루 종일 울었다”면서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감격했다.

선재부 3선재공장의 정석준 공장장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많은 분들의 격려로 끝까지 힘을 냈다”면서 “양질의 제품 생산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복구 작업은 당초 포스코가 자체적으로 예상한 완료 시기인 1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직원들은 “빠르면서도, 안전하게”를 매일 곱씹었다.

제강부 2제강공장의 최주한 공장장은 “CCTV에 나타나는 영상을 AI 기술을 활용해 위험을 판단하는 기술을 적용하는 중”이라면서 “스마트하고 안전한 공장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복구 작업에는 연인원 약 140만 여명이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포스코 전 임직원은 물론 민·관·군이 모두 힘을 합쳤다. 특히 포스코명장 등 전문 엔지니어들이 보유한 기술력은 복구 과정에서 한건의 중대재해도 발생하지 않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기 분야 포스코명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규점 EIC기술부 상무보는 “제철소 내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수전변전소 복구가 가장 급선무였다”면서 “밤낮없이 매달려 제철소에 빠르게 전원을 공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포항제철소에서 퇴직한 직원이 복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포스코가 포항제철소 정상 가동을 위해 얼마나 절실하게 임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철소의 불이 꺼진 것은 포스코 창립 이래 초유의 위기 상황이었던 만큼 가장 중요한 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는 일이다.

천시열 공정품질담당 부소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제철소 주위 국도변에 유입수를 차단하는 차수벽을 설치하고 있고, 냉천의 제방 차수를 보강하기 위해 Sheet Pile(강널말뚝) 설치를 6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