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삼성 오너가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그릇이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1961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일본 게이단렌(경단련)을 본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 창업주가 영면에 든 뒤에는 그의 아들인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꾸준히 회장 추대를 권유받았다.

하지만 삼성그룹 자체를 키우는 데 더 욕심이 컸던 이 선대회장은 한 번도 전경련 회장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물론 전경련 회원사로 꾸준히 연을 이어가긴 했다. 그 세월이 55년.

길었던 전경련과 삼성의 인연은 2016년 단박에 끊어졌다. 이 창업주의 손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과단성 있게 탈퇴를 선언한 것. 국회의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 국정조사’ 청문회 현장에서 이 회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전경련과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할아버지가 만들고 손자가 탈퇴한 단체. 손자는 탈퇴 선언 7년 만인 올해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전경련으로의 복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삼성 경영진의 지시를 받지 않는 독립조직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감지했다.

준감위는 지난 16일부터 공식적으로 재가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삼성 준감위 회의는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을 위한 ‘선행 절차’에 해당한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진행된 준감위 회의는 일단 ‘숨 고르기’로 끝났다.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회의를 마치고 나온 뒤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면서 “완전한 하나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 재가입 문제는 준감위 입장에서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이슈였다. 준감위는 18일 다시 논의한다.

준감위 내부에선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준감위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재판부가 삼성에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해 출범한 조직이다. 논의 과정과 결과 모두 정경유착 등의 비판적인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론을 못 낸 삼성 준감위에 전경련은 난감하다. 오는 22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단체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 수장으로 류진 풍산 회장을 선임하는 등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데 더해 탄력을 붙이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다는 점을 걱정할 필요가 있다.

전경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 모금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한나라당의 세풍·차떼기 사건 등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드러날 때마다 변화를 약속했지만 쇄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국정농단 사건 때 여실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삼성이 재가입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전경련의 급격한 위상 변화 때문이다. 전경련은 윤석열 정부의 거의 모든 대통령실 주관 행사에 재계 대표자 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멘토로 불리는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취임한 뒤부터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임기가 끝나더라도 개혁이 실행되는지 자문 및 협조하고 필요하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밑자락을 깔아놓은 터라 전경련에 류 회장 체제가 출범한 뒤에도 고문 형식으로 남아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이 삼성을 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대한상공회의소에 내준 ‘경제단체 맏형’ 지위를 찾아오기 위해서는 재계 1위 기업을 회원사로 둬야 한다는 정치적인 까닭 때문이다. 삼성이 전경련 재가입에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으면 탈퇴 당시 함께 탈퇴서를 냈던 나머지 그룹들도 합류에 대한 중지를 모을 가능성이 커 그간 급격히 쪼그라들었던 운영비를 단번에 충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준감위는 재계의 ‘김병준발’ 지형변화와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 당시 “앞으로 전경련 활동 안 하겠다”고 약속한 이재용 회장의 ‘초심’ 사이에서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재계에서 대관 업무를 하는 한 관계자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왜 전경련을 필요로 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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