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사용 실태 파악조차 부족…"일부 노력에도 여전히 무관심 많아"
국회 폐지수거량 매달 3만2359kg…A4 기준 5900만장(2020년 기준)

[데일리한국 최나영 기자] 올해도 기후위기의 여파는 여실히 드러났다. 한반도를 강타한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실종자 수는 12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기후변화의 징후들이 매년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7월 박광온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적 의제로 격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국회는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를 채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어가는 국회는 ‘친환경 국회’를 위해 얼마나 변화하고 있을까. 국회사무처는 2021년 ‘친환경 국회 조성 3단계 로드맵’을 발표해 2022‧2024년 등 단기‧중기별 목표를 완수한 뒤 2030년까지 친환경 국회 조성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국회는 발표한 계획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잘 실천하고 있을까. <데일리한국>은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 중 ▲종이 소비 ▲일회용기 사용 부분을 점검해 봤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1회용으로 사라지는 제출 자료와 정책 보고서들. 사진=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국정감사가 끝나고 1회용으로 사라지는 제출 자료와 정책 보고서들. 사진=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한 해 국감으로 숲 1ha 이상 사라져

“국정감사 때는 종이 자료가 국회에 한 트럭 분량씩 나와요.”

지난달 23일 한 의원실 관계자가 <데일리한국>에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국회는 종이 사용이 넘쳐나는 곳이다.

실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53개 피감기관의 국정감사 자료 인쇄를 위한 종이 사용량은 1700만장을 넘었다. 이를 위한 인쇄비용은 총 32억 원에 달했다. 서울시 평균임목축적 값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해 평균 국정감사에 사용되는 종이로 1ha(헥타르) 이상 면적의 산림이 사라지고 있다.

국정감사 때만이 아니다. 같은 의원실에 따르면 국회사무처‧예산정책처‧입법조사처‧국회도서관 등 국회 소속기관 4곳이 2018~2020년 3년 동안 사용한 인쇄비용도 76억원에 이른다. 또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20년 월평균 국회 폐지수거량은 3만2359kg에 달한다. A4용지 기준 매달 약 5900만장의 폐지가 나오는 셈이다.

초선 의원들이 제안한 ‘종이 없는 국회’, 영향력은?

국회 내부에서도 종이 낭비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20년 10월 이 의원을 포함한 당시 초선 의원 50명은 국회의 종이 낭비 문제를 지적하며 ‘종이 없는 국정감사’를 국회 소속기관들에 제안했다.

이 의원은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사무처에 국회 종이 낭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국정감사 때 자료를 종이가 아닌 전자파일 형태로 받자고 제안했다. 종이 인쇄자료는 예외적으로 요청하는 의원들만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상임위 회의 때나 국정감사 때 각 정부 부처에서 설명 자료를 책자로 의원실 당 2부 정도씩 보내는데 그 자료가 1000 페이지가 넘어가기도 한다”며 “그런데 너무 두껍다보니 의원들이 찾아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특히 인사 말씀 같은 것은 전자파일로 확인해도 되는 데 굳이 인쇄로 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동안 인쇄물 배포량을 집계하고 이를 줄여나갈 방안을 수립할 것도 요청했다.

표=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표=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일부 상임위, 국감‧회의 때 ‘종이’ 대신 ‘전자문서’ 이용

<데일리한국>이 확인한 결과, 제안 이후 국회 일각에서 종이 사용량 감축을 위한 방안이 일부 시도되고 있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정보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 등 일부 상임위원회가 국정감사나 상임위 회의 때 인쇄 자료 대신 전자 자료를 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의원실 A 보좌관은 “상임위 회의 때 의사일정 등이 당일 변경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자료를 인쇄해 줘도 잘 검토하기 힘들다”며 “(일부 상임위에서) 인쇄 자료가 전자 자료로 바뀐 것만 해도 엄청나게 종이나 인력 소비가 줄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또 2020년 이후 국회사무처는 국회에서 발행하는 종이 간행물을 발간하기 이전에 수요조사를 해 인쇄량을 최소화하는 변화도 보였다. 국회 건물 내부 곳곳에 붙어 있는 게시판을 기존 종이 포스터를 붙이는 방식이 아닌 전자 포스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2020년 한 상임위원회 회의 당시 의원 자리에 종이 자료가 쌓여 있는 모습. 사진=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2020년 한 상임위원회 회의 당시 의원 자리에 종이 자료가 쌓여 있는 모습. 사진=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국회, 종이 사용 실태 파악조차 여전히 미흡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도 적지 않다. ‘종이 없는 국회’ 시스템 구축이 미비하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간편하게 인쇄자료 필요 여부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인쇄자료 수요조사 시스템 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의지가 있는 특정 상임위나 의원들만 인쇄 자료 사용을 지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인쇄 형태 자료를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지 않기 위해서는 개별 의원‧상임위가 이를 별도로 요청해야 하는 노력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상임위는 사무처가 관할하는 기관이 아니다”며 “어떻게 회의를 할지는 각 위원회에서 위원장들과 간사 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다 보니 이것을 일률적으로 깔지 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고 자료를 관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종이 없는 국회’를 위해선 국회에서 종이 낭비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데, 국회사무처는 어떤 상임위가 국감 또는 회의 때 종이자료 대신 전자 파일을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2020년 국정감사에서 종이 사용량 절감 정도 등을 파악해 국회사무처 홈페이지에 공개할 것을 국회사무처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감이나 상임위 회의 등에 대한 종이 사용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지만, 2021년부터 매년 말 종이 발간물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조사하고 있다”며 “다만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진 않다”고 밝혔다.

올해 10월 국감을 앞두고 한 의원실에 인쇄 자료가 쌓여가고 있는 모습. 지난달 13일 촬영. 사진=데일리한국
올해 10월 국감을 앞두고 한 의원실에 인쇄 자료가 쌓여가고 있는 모습. 지난달 13일 촬영. 사진=데일리한국

종이 없는 국회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대응도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었다. 국회 운영을 담당하는 국회 운영위원회에 수개월 정도 소속됐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운영위에 소속돼 있던 기간이 짧아서 일 수 있는데, 운영위에 소속돼 있던 동안은 ‘종이 없는 국회’와 관련한 논의가 운영위에서 나온 적 없다”고 말했다.

2020년 당시 종이 없는 국감 제안문 선언에 동참했던 한 초선 의원 의원실 관계자도 “국회에서 종이 사용에 크게 관심 가지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주변 의원들 중에도 크게 관심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종이 없는 국회’ 개별 의원 의지에 기대…“시스템화 필요”

다만 박홍근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의 종이문서 감축을 목표로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2022년 7월 대표발의 해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에는 국회에서 문서를 작성‧발송‧접수‧보관‧보존‧활용을 할 때 전자문서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국회의 종이문서 사용실태를 조사해 필요한 경우 종이문서 감축 계획을 수립해 친환경 국회를 조성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이 의원은 “제안 이후 국회사무처가 2030년까지 친환경국회 조성을 선언했고 전자게시판 설치 등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은 의원들의 자발적인 절감 노력에 기대는 수준”이라며 “개별 상임위가 아닌 국회 전체의 변화를 위해서는 의원들에 대한 인쇄물 수요조사와 종이 사용량 모니터링 등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 보좌관도 "모니터로 문서를 잘 못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전자 시스템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며 "다만 정보위 같은 경우 정보 보안이 중요해서 종이 자료를 쓰는 부분도 있는 만큼, 종이 없는 국회를 위해선 기술적 측면도 뒷받침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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