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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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는 발목에 염증이 생겨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실손보험 청구를 위한 서류를 받았다. 관련 서류를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 보험 관련 앱을 통해 접수를 마쳤다. 보험료 청구 이후 불필요해진 관련 서류는 결국 파쇄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올 하반기 보험업계 최고의 화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가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에 대해 개선을 권고한 이후 14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그 법안이다. 이번 국회에서 정무위와 법사위 문턱을 무난히 넘으면서 드디어 보험업계 숙원사업이 해결되나 싶었지만 또다시 본회의에서 막히며 제자리걸음 중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병원이 환자 진료내역 등을 전자문서 형태로 제3의 중개 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보내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보험금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간 소비자들은 실손보험을 청구하기 위해 병원에서 발급하는 종이 서류를 보험설계사나 보험사의 팩스·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제출해야 했지만 간소화 법안이 통과되면 특별한 절차 없이 간단하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소비자들의 편의를 이유로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이 꾸준히 추진해 왔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인해 14년째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통과되면 민감한 개인의 의료정보가 보험사에 손쉽게 수집·축적될 수 있고 해당 정보를 통해 보험료 가입 거절이나 보험료 인상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 중계기관 선정을 놓고 기존 보험업계의 제안들을 모두 거부하면서 추후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진료자료 전송 거부 등 보이콧을 진행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보험계와 의료계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14년간 가장 고통을 받은 건 보험료·진료비를 내는 소비자다. 약 4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은 현재도 수십·수백건의 보험료 청구가 이뤄지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종이 서류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실제 진행된 설문조사를 봐도 소비자들이 불편함으로 인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요 소비자단체가 2021년 최근 2년간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손보험 청구 관련 인식 조사 결과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47.2%였다. 절반 정도가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것이다. 보험금 청구 포기 이유로는 적은 진료 금액과 서류발급을 위해 병원 방문 시간 부족 등이 가장 많았다.

보험금 청구를 위한 진료비영수증이나 세부내역서 등 종이 서류도 매년 4억장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의료계의 몽니에 소비자는 비용과 불편함을 모두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국회의 높은 문턱을 하나씩 넘고 있다. 정무위와 법사위의 깐깐한 심사를 통과했고 본회의만을 앞두고 있다. 다만 국회 본회의가 무산되면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의 의결 일정도 다음 달 이후로 미뤄졌다.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가장 중요시해아 하는 건 바로 소비자다. 이용되지 않는 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분쟁이 계속 이어지면 불편함으로 인해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보험업계와 의료계에도 커다란 타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제도화가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정치권과 보험·의료계는 그 어떤 이익이나 쟁점보다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 편의성 제고라는 본질에 집중해야 할 때다. 더 이상의 몽니는 소비자들에겐 충치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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