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금감원 은행장 간담회. 사진=금융위원회.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금감원 은행장 간담회. 사진=금융위원회.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상생(相生)이란 공존하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다. 한쪽만 무언갈 지속적으로 원하거나 다른 쪽의 도움이 없다면 극단적으로는 기생(寄生) 관계로 변모할 가능성도 생긴다.

올해 금융권 화두는 '상생금융'이다. 2023년 내내 당국의 상생금융 요구는 거세졌다. 그 요구는 올해를 한달 남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수천억원의 상생금융 방안을 제안했던 금융권은 연이은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금융권인 금융지주·은행은 물론 2금융권인 보험·카드사 등도 이러한 요구에 '상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냐고 지적한다.

지난달 27일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7개 은행 수장들을 만나 상생금융 방안을 촉구했다. 이어 오는 6일에는 보험사 CEO들을 만나 상생금융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수장까지 직접 나선 금융당국의 노골적인 요구에 은행권은 2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았으며 보험사 역시 청년 전용 보험상품을 개발하거나 보험료를 인하하는 식의 상생금융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약 5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이번 상생금융안에 대해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했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갔지만 금융사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식의 '곳간 털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올 한해 많은 이득을 냈으니 그걸 그대로 사회에 환원하라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국의 으름장에 금융사들이 연이어 참여하고 있지만 '상생'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당국이 압박하면 1금융사가 먼저 방안을 내놓고 뒤이어 2금융사가 따라 하는 '챌린지' 형태의 촌극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된다'는 눈치게임식 상생이 진짜 상생금융일까.

실제 한 보험사 관계자는 "상생금융이 올 초부터 연이어 있었다"며 "기존 사회공헌과 이번 상생금융안 모두 개발하고 이행하는 건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물론 올해 금융사들은 최고 실적을 갱신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공기업이 아니다. 대부분 상장회사이면서 엄연히 주주들이 있는 민간 기업이다. 당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를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몇조 단위의 방안을 내놓는 건 '상생' 없는 '상생'을 위해서다.

금융권 일각에선 매년 상생금융안을 내놓느니 차라리 국회에서 논의 중인 '횡재세(초과이윤세)' 도입에 찬성하는 게 낫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횡재세 법안은 5년 평균 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수익에 최대 40%의 부담금을 물려 서민 금융 지원에 쓰자는 것이 골자다.

금융사들은 이왕 상생금융을 한다면 그 의미가 넓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단순한 지원책이 아니라 금융사들이 지원책을 내놓으면 이를 시행할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 주는 범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생'이 아닌 '상생'을 위한 '금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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