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아트오페라단 ‘2023서울오페라페스티벌’ 공연
​​​​​​​김숙영 촘촘한 연출로 과거 작품에 새 의미 부여

테너 신상근과 소프라노 서선영이 14일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 연기하고 있다.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테너 신상근과 소프라노 서선영이 14일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 연기하고 있다.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1. 파르네제 궁전 안 스카르피아의 집무실. 토스카에게 호시탐탐 야욕을 드러냈던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는 제안을 한다. “나와 하룻밤을 보내면 연인 카바라도시를 살려주겠다”고. 밖에서는 카바라도시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있다. 울부짖는 비명 소리가 토스카의 귀로 그대로 들어와 박힌다. 스카르피아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토스카 서선영’이 노래를 부른다.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다. “그저 노래와 사랑을 위해 살았을 뿐, 누구에게도 몹쓸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저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신을 향한 원망과 절규가 가득하다. 관객 모두는 가엾은 토스카의 마음에 공감한다.

#2. 성 안젤로 성벽 아래에 있는 감옥이다. 사형이 집행되기 1시간 전, ‘카바라도시 신상근’은 간수에게 간청해 연인에게 남길 편지를 쓴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슬픔이 울컥 올라온다. 토스카와의 즐거웠던 날을 회상하며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를 부른다.

이 아리아의 선율은 3막의 막이 올랐을 때부터 오케스트라가 몇 번 되풀이 연주하며 미리 분위기를 돋운다. 죽음을 앞둔 카바라도시는 처절함과 애절함을 토해낸다. “별은 빛나고, 대지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이제 와서 이토록 아쉬운 것일까, 목숨이란 것이!” 남자의 노래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프라노 서선영이 14일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 연기하고 있다.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소프라노 서선영이 14일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 연기하고 있다.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역시! 서선영’ ‘과연! 신상근’이었다. 14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노블아트오레라단이 ‘2023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 출품작으로 자코모 푸치니의 ‘토스카’를 공연했다. 웰메이드 오페라답게 주역을 맡은 두 사람은 귀호강 아리아를 선사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날 공연에 앞서 열린 13일 무대에서는 김라희(토스카), 박성규(카바라도시), 박정민(스카르피아) 등이 출연했다.

‘토스카’는 ‘라보엠’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작품이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800년 6월 어느 날, 안드레아 성당에서 성화를 그리던 화가 카바라도시는 탈옥한 정치범 안젤로티를 몰래 숨겨준다. 카바라도시의 연인이자 최고의 여가수 토스카도 이 일에 휩쓸리면서 단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비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문, 살인, 자살, 배반 등을 그대로 보여주며 극적 몰입감을 강조해 오페라의 블록버스터로 불린다.

워낙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기 때문에 출연진과 제작진 등이 ‘파워 라인업’을 갖추지 않으면 제대로 브라보 브라바를 받을 수 없다. 소프라노 서선영과 테너 신상근의 활약뿐만 아니라 ‘스카르피아 정승기’도 강렬한 빌런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1막에서 자신의 흑심을 감추며 짐짓 성스럽게 ‘테 데움(Te Deum)’을 부를 땐 그 뻔뻔한 민낯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예술총감독 신선섭과 지휘 양진모와 함께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너오페라합창단, 한울어린이합창단도 빼어난 솜씨로 오페라에 큰 힘을 보탰다.

테너 신상근이 14일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 연기하고 있다.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테너 신상근이 14일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 연기하고 있다.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스토리를 끌고 간 김숙영 연출의 실력도 빛났다. ‘저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겠어’라는 단순 치정극에 머물 수 있는 사건에 의미를 부여해, 결국 남자들의 전쟁놀이(싸움·투쟁·갈등)의 가장 큰 희생양은 여자라는 처절한 역사극으로 전환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이스라엘·하마스의 충돌에서도 결국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음을 에둘러 비판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과거의 작품이 현재에도 이렇게 유용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공연을 마친 뒤 김숙영 연출은 “3막에서 지하 감옥을 표현할 수 있는 하부무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인프라 부족으로 구현할 수 없어 아쉬웠다”며 “그래도 성악가들이 모두 100% 넘게 자기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오는 21일까지 열린다. 그랜드오페라 갈라쇼(15일)에 이어 어린이 오페라 ‘빨간모자와 늑대’(17일), 영상가곡콘서트 ‘위대한 청춘 70년’(18일), ‘영화 속의 오페라’(19일),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20·21일)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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