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 산업 성장성 둔화에…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 투자
ADC, 빅파마들도 눈독…레고켐, 최다 파이프라인 보유

사진=오리온그룹 제공
사진=오리온그룹 제공

[데일리한국 최성수 기자] 오리온이 선택의 기로에서 ‘도전’을 택했다. 저출생 등으로 식품기업의 성장성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에 사활을 걸기로 한 것이다.

식품기업의 바이오기업 인수에 일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오리온이 택한 분야가 빅파마들도 주목하고 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라는 측면에서 장기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바이오 기업 인수, 지금이 적기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리온그룹은 5500억원을 투자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레고켐바이오)의 지분 25%를 확보하고 최대주주로 올라설 예정이다. 대금 납입 예정일은 오는 3월29일이다.

지분 매입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및 구주 매입을 통해 이뤄진다. 인수 주체는 홍콩 소재 오리온 계열사인 팬오리온코퍼레이션이다.

이번 인수는 오리온이 일찌감치 주목해온 바이오 사업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상 바이오사업 확장에 정점을 찍는 투자다.

오리온은 2020년 신성장동력 사업 분야로 바이오를 선정하고, 다음해인 2021년 3월 중국 국영제약기업 ‘산둥루캉의약’과 함께 합자법인 ‘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설립했다.

현재 대장암 체외진단 임상을 진행 중이며, 900억원 규모의 결핵백신 공장 준공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항암제 신약개발에까지 본격적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시장 일부에서는 오리온의 바이오기업 인수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제과기업이 항암제 기업을 인수하는 첫 사례이기 때문에 시너지에 대한 우려다. 발표 당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우려는 기우일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장지혜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에서 “시장의 우려는 레고켐바이오을 향한 지속적인 현금 유출 가능성과 단일 사업 구조의 훼손이지만 이는 기우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오리온의 입장에서 레고켐바이오는 손자회사로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바이오 사업을 위한 투자 자산의 성격이 강하며 오리온 본사 실적에 미칠 영향도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특히 오리온 입장에서는 지금 바이오 기업 인수가 어느 때보다도 매력적이다. ‘본업’인 제과 시장의 성장성이 점차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성장을 이어오고 있으나,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해 제과시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이전부터 나온 전망이다.

반면 바이오는 산업 중에서도 향후 성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분야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 컨설팅 기관인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향후 5년간 7.5~10.5% 성장세로 계속해서 큰 폭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기준 4310억 달러(약 573조원) 규모에서 2027년에는 6660억 달러(88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도 바이오 첫 진출 당시 우려가 많았지만 영업이익만 1조원을 넘는 기업을 만들어냈다”며 “제과 산업 구조상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이라면 바이오에 눈독을 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고켐바이오 ADC 파이프라인. 사진=레고켐바이오 홈페이지
레고켐바이오 ADC 파이프라인. 사진=레고켐바이오 홈페이지

◇전세계서 가장 많은 ‘ADC 파이프라인’ 기업

특히 오리온이 점찍은 분야가 바이오 중에서도 떠오르는 기술인 항체약물접합체(ADC)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크다.

ADC는 항체의약품과 1세대 세포독성 약물 두 가지를 링커로 연결해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술이다. 원하는 부위를 정밀 타격해 ‘유도탄 신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ADC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가 2019년 등장한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개발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이 약은 지난해에만 3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 조사 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ADC시장은 2023년 97억 달러(약 12조7000억원)에서 연평균 15.2%씩 성장해 2028년이면 198억 달러(약 2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같은 추세에 글로벌 빅파마들도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화이자는 지난해 3월 ADC 전문 기업 시젠을 430억 달러(약 56조원)라는 막대한 돈으로 인수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애브비도 최근 미국 ADC 개발사 이뮤노젠을 101억달러(약 13조원)에 인수했다.

무엇보다 레고켐바이오는 국내 기업 중에서도 ADC에 차별점을 가진 기업으로 꼽힌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ADC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지난달말 얀센에 ADC 후보 물질 ‘LCB84’를 기술수출하는 ‘빅딜’을 성사시키며 신약개발사로의 저력을 보여줬다. 기술수출 계약 규모만 최대 최대 17억 달러(약 2조2000억원)에 이른다.

2015년에는 중국 포순제약에 기술이전을 성공시킨 바 있다. 현재까지 ADC 분야에서 총 10건 이상의 기술이전 계약을 성공했다.

특히 후보물질들이 점차 임상에 들어가면서 앞으로의 성장성이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레고켐바이오는 매년 4~5개 이상의 후보물질 발굴과 5년 내 10개의 임상 파이프라인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오리온의 이번 인수로 레고켐바이오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임상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레고켐바이오에 대한 오리온의 투자는 M&A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ADC기술을 보유한 한국 바이오기업에 한국 자본을 투자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며 “탄탄한 자본을 가진 기업과 유망한 기술을 가진 바이오기업의 결합으로 K-바이오 산업을 키우는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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