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끝나자 대법원 무의미항 '의원직 상실형' 선고
[데일리한국 김병탁 기자]윤미향 전 의원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후원금 횡령 재판이 기소된 지 4년 2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최종 '의원직 상실형'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보수 성향 시민단체에서는 '지연된 정의'라며 사법 체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윤 전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지난 2020년 5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후원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보수 시민단체들에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여러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이 그를 고발했으며, 서울서부지검은 약 4개월의 수사 끝에 그해 9월 윤 전 의원을 업무상횡령·사기 등 8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윤 전 의원의 최종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다. 공직선거법상 금고 이상의 형 선고를 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돼 현직 의원이라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하지만, 윤 전 의원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아 지난 5월 정상적으로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쳤다.
이처럼 윤 전 의원의 재판이 길어진 데는 양쪽 공방 속에 재판이 하염없이 늘어진 탓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심에서 윤 전 의원 측은 검찰이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아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필요한 부분은 모두 열람·등사를 허용했다고 맞섰다. 윤 전 의원 측 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재판이 연기되기도 했다. 또 예기치 못한 사유로 재판장이 교체되는 돌발 상황이 맞물리기도 했다. 그사이에 재판을 준비하는 공판준비 절차에만 11개월이 소요됐다. 첫 정식 재판은 2021년 8월에나 열렸다.
사건 접수 시점을 기준으로 윤 전 의원의 1심 판결은 2년5개월이 소요돼 작년 2월에 선고됐다. 2심 판결은 그해 9월에 선고됐지만, 대법원에 와서도 1년 2개월 만인 이날 최종 판결을 선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제청해 임명된 김상환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심리했다. 김 대법관은 다음 달 퇴임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윤 전 의원 사건과 같은 불구속·합의부 형사재판의 경우 작년 평균 소요 기간이 1심 228일(약 7개월 반), 2심 194일(6개월반), 3심 155일(5개월)이었다.
이를 두고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 지연으로 인해 윤 전 의원에 대한 의원직 박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그냥 임기를 마치게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임기가 있는 경우 가급적 임기 전에 재판을 마쳐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이날 "법원의 시간만 무려 4년 2개월이 걸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조계의 널리 알려진 법언을 인용해 비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면서 개선책 마련을 적극적으로 주문해왔다.
지난해 12월 취임사에서 조 대법원장은 "국민들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여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곧바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가장 중요한 현안은 재판 지연 문제"라며 "우리는 사법부가 직면한 재판 지연이라는 최대 난제를 풀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윤 전 의원 사건의 경우 범죄 혐의가 8개로 개인 사건으로서는 비교적 많고 수사 기록이 방대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고난도 특수 사건인 반부패부의 대형 기업·부패 사건보다도 더 오랜 재판 기간이 걸린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예컨대 1심 합의부 형사 사건의 평균 공판 횟수는 3.66회인데, 윤 전 의원 사건은 1심에서만 무려 39차례의 재판이 열렸다는 점에서, 사법 질서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 개편돼야 한다는 법조인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