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도아 기자] 운명처럼 감밭에 모여든 삼대(三代)의 달콤한 감 전쟁이 시작되다.
오는 16일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에서는 ‘종현 씨 감나무에 봉이 열렸네’편이 방송된다.
경상남도 함안 파수마을에는 평생 감만 바라보며 살아온 노부부가 있다. 감나무 앞에선 늘 웃음기를 싹 빼고 진지한 얼굴이 되는 종현 씨(76)와 종종걸음으로 뭐든 뚝딱뚝딱 해내는 봉이 씨(70)가 그 주인공이다. 부부만으로도 부족해서 6년 전엔 뉴욕에서 유학 중인 아들과 며느리까지 불러들였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안고 감밭으로 모여든 가족은 감 수확 철엔 미우나 고우나 온 식구가 뭉쳐 감밭에서 곡절 많은 인생사를 두런두런 펼친다. 하지만 늦가을의 평화로운 정취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감밭은 멀리서 보아야 낭만이고, 가까이서 보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거기다 곶감은 손이 많이 간다. 감을 따고, 손질하고, 말리기까지 12번이나 손질을 해야 곶감이 완성된다. 하늘이 돕고, 사람이 정성을 더해야 비로소 탄생하는 곶감. 감 하나에 울고 웃는 감 가족의 전쟁 같은 일상으로 들어가 본다.
감 앞에서는 누구보다 엄한 종현 씨. 종현 씨에게 대적할 만한 사람은 봉이 씨다. 봉이 씨는 마치 다람쥐처럼 작은 몸집으로 감밭 구석구석을 누비며 누구보다 많은 일을 빠르게 해낸다. 사실 봉이 씨는 태어날 때부터 감나무 집의 딸이다. 제법 넉넉한 형편에서 곱게 자란 봉이 씨의 부모님은 도시에서 편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울산에 사업하는 총각 종현 씨에게 시집을 보냈다. 사업수완이 좋은 남편은 그 시절 슈퍼마켓을 크게 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슈퍼마켓은 문을 닫았다. 결국 돌아올 곳은 감나무 집 친정밖에 없었다. 삼 남매 안고 친정으로 돌아온 봉이 씨와 눈치 보이는 처가살이를 시작하게 된 종현 씨는 그때부터 곶감에 인생을 걷게 됐다.
감 나무집 큰아들 성준 씨(47)는 감 농사를 지을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영어교육을 전공한 성준 씨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성준 씨는 플로리스트 공부 중이던 아내 열매 씨(43)를 만나 삼 남매도 낳았다. 미국에서 정착할 계획이었던 부부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돌아오라는 호출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러면서 부부는 감 농사를 짓게 됐다.
6년 전 감밭으로 돌아온 부부. 하지만 꼬장꼬장한 아버지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매일 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으며 감밭을 일구어 나가고 있다. 이젠 감밭 돌아가는 사정도 훤한 ‘젊은 사장님’인데도 종현 씨 눈엔 여전히 미덥지 않은 게 많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휴일도 없이 일하는 부모님 때문에 아들 내외는 여전히 이인자 위치다. 감나무도 때가 되면 세대교체를 한다는데, 이 가족의 세대교체는 언제쯤 이루어질까.
온종일 일만 한 종현 씨가 늦은 밤 또다시 집을 나선다. 쑥스럽게 달려간 곳은 바로 검정고시 학원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 구경은 초등학교가 전부였던 종현 씨는 배움이 짧은 게 평생의 한이었다. 올봄, 4개월 만에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금은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 중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함안 감나무 집. 감에 인생을 건 아버지와 이름부터 남다른 어머니 봉이 씨. 그리고 멀리 뉴욕에서 돌아온 아들네까지. 주렁주렁 3대의 땀과 행복이 감나무에 걸려있다. 날이 추워지면 더욱 달콤해지는 곶감처럼 가족의 행복도 무르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