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빗방울에는 이름이 있을까

이경은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이경은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독서회에서 토론할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였다. <파리 리뷰>라는 잡지도 새로웠고, 책을 들춰보니 낯선 작가들의 이름이 많아 무작정 결정했다. 물론 저 아름다운 제목에서 이미 마음이 반은 넘어간 탓이지만...

레이먼드 카버나 보르헤스처럼 유명한 작가들도 있지만, 아주 적게 실렸거나 아예 소개된 적이 없는 작가들이 위주이다. 저 존재조차 몰랐던 다른 세계의 작가들을 알게 된다는 사실에 금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 된다. <파리 리뷰>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라 불리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고, 타임지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는 격찬도 받았다. '문학실험실'이라는 별호가 붙어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보다는 작가의 경력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편집을 한다는 말에 매료되었다. 가장 성공한 작품만을 모은 게 아니라,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 라는 시선에 마음이 둥둥거린다. 책을 넘길 때마다 설렌다.

"이야기를 쓰는 방식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운동이나 학파만을 신봉하지도 않습니다. 언어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모두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믿습니다.” 편집자들의 말이다. 든든하다. 

책을 이야기하는 시간. 흔한 말로 돈이 생기는 것도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독서회에서 책에 대해 2시간 동안 진지하게 토론을 한다. 내 안의 영혼이 조금씩 눈을 뜬다. 그래, 오늘 읽은 책 속의 글들과 문장들이 마음 밑바닥에 깊이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날 튀어 나오겠지. 어떤 형태로든...

생의 기쁨은 이렇게 한 권의 책에서도 나온다. 이 책 안에는 15편의 짧은 단편들이 들어 있는데, 생각이 길게 붙어있다. 사방으로 생각이 마구 뻗어나간다. 얼핏 이해가 잘 안 되는 작품도 있다. 다행히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서히 그 안개가 걷히긴 한다. 좋은 건 늘 만만치 않다.

나는 왜 이해하기가 어려울까 생각했다. 대답은 간단하다. 낯설어서. 다만 그 이유뿐이다. 우리가 한국 문단에서 아니 한국 출판사에서 출간하지 않아 볼 수 없었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전혀 익숙하지 않은 동네의 작가들이라서 그럴 뿐이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노래를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주춤거려진다. 잠시. 그렇다고 미리 피할 필요는 없다. 좋은 작품이 너무 많으니까. 모르겠으면 일단 페이지를 넘기고, 나중에 다시 보면 된다. 아니면 서로 전화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만나서 차 한 잔하면서 토론하면 더 좋고. 빗방울마다 하나씩 이름을 붙여 주면서...

"문장과 문장 사이를 헤매다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하고, 처음 보는 꽃이 만발한 벌판을 만나기도 한다" 라고 쓴 옮긴이의 말이 그야말로 더할 나위없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리디아 데이비스의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를 앨리 스미스가 "이 작가는 문장 몇 줄로 우주를 전달한다" 고 평한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문장 안에 우주가 들어있듯 삶의 자국이 물방울에 비춰질까. 물방울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앗, 비로군!

아이리시 커피 한 잔에 B.J 토마스의 <빗방울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어요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를 들으면서 읽는 책!

◆이경은 주요 약력

△서울 출생 △계간수필(1998) 등단 △수필집 '내 안의 길' '가만히 기린을 바라보았다' '주름' 외 8권. △그 중 수필 작법집 '이경은의 글쓰기 강의노트', 포토에세이 '그림자도 이야기를 한다', 독서 에세이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 △디카 에세이집 '푸른 방의 추억들' △수필극 '튕' △제43회 조연현문학상(한국문협 주관), 한국문학백년상(한국문협 주관), 율목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숙명문학상 등 수상 △현재 방송작가, 클래식 음악 극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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