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고등학교 과학을 배울 때만해도 이 세상 물질을 쪼개고 쪼개다보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을 양성자, 중성자, 전자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양성자와 중성자는 다시 쿼크로 나눠지며 결국 물질은 쿼크와 전자, 전자뉴트리노 같은 소립자들로 이뤄져 있고 그것도 온도에 따라 3세대(Third Generation)에 걸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거기에 더해 이런 물질 입자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보존(Bozons)과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까지 있다는 사실까지 모두 알게 됐다. 유일하게 실험적으로 발견되지 않았던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까지 올해 발견함으로써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라 불리는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모두 밝혀졌다.
견강부회 일 수 있지만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氣)가 아마도 보존(Bozons)의 형태가 아닌지 언 듯 생각이 든다. 같은 양자상태에 페르미온(Fermions)은 2개 이상의 입자가 함께 공유될 수 없지만 보존(Bozons)은 무한대의 보존입자가 서로 겹치거나 흩어지면서 강한 힘이 되거나 약한 힘이 되기 때문에 에너지인 보존의 집합체가 기(氣)와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기(氣)는 고대 사람들이 자연현상의 변화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개념이다. 우주 안의 모든 사물은 기(氣)의 운동변화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으로 인식했으며 이러한 관점을 한의학에 도입해서 기(氣)의 운동변화로 인체의 생명활동을 해석하였다. <경악전서>에서 "인지유생, 전뢰차기(人之有生, 全賴此氣)"라 해서 사람의 생애는 모두 기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의문법률>에서도 "기취즉형성, 기산즉형망(氣聚則形成, 氣散則形亡)"이라 해서 기가 모이면 형체가 이뤄지고, 기가 흩어지면 형체가 사라진다고 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은 일기(一氣)인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 섭취여부와 다름이 없다. 태양에너지를 광합성이란 방법으로 고정하고 합성하고 저장해서 사용한 식물의 가장 오래된 조상인 시아노 박테리아 덕택에 무수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 이산화탄소와 물을 이용해서 태양에너지를 녹말을 만드는 인공광합성을 이용할 수 있다면 미래의 식량문제는 모두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이 기술은 완성되지 않은 듯하다. 기(氣)는 에너지의 총칭으로 우리가 섭취한 영양물질이 세포내 미토콘드리아로 유입되어 그곳에서 ATP란 에너지로 탈바꿈해서 사용된다. 우리가 일하고 먹고 말하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 또한 기(氣)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기(氣)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진기(眞氣)라고 하고 진기(眞氣)의 원천을 크게 천지인 3기로 말한다. 천기(天氣)는 폐의 호흡으로 들어오는 기운이고, 지기(地氣)는 땅의 수곡(水穀)의 정미(精微)로운 물질인 음식에서 얻어지는 기운이며, 인기(人氣)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기(精氣)다. 인기(人氣)는 선천지기(先天之氣)라 하며,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는 후천지기(後天之氣)라고 한다. 정기(精氣, 인기)를 잘 갈무리 하고 천기와 지기가 잘 흡수되고 운용되면 건강한 몸이 된다. 진기(眞氣)가 우리 몸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기기(氣機)라고 한다. 천기와 지기가 우리 몸에서 작동하는 기기는 '승강(升降)과 출입(出入)'이다. 출입은 말 그대로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말한다. 코를 통해서 들이쉬는 공기와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물은 모두 입(入)에 속하며, 밖으로 배출되는 공기와 대변, 소변, 땀, 생리혈, 침, 가래 등은 모두 출(出)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들어온 물질을 소화해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남은 노폐물을 밖으로 내 보내는 것을 출입(出入)이라 한다. 승강(升降)이란 영양물질이 우리 몸 안에서 올리고 내리는 역할을 해서 몸 전체에 영양물질이 골고루 잘 분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소문 육미지대론>에서 "승강출입(升降出入) 무기불유(無器不有)"라 했다. 승강출입 같은 기기(氣機)는 생명체의 오장육부 같은 장기가 있어야지 비로소 이뤄진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죽으면 승강출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봄날이면 깊은 구덩이에 인분을 가득 채워서 호박씨 3~4알을 넣어 두면 가을에 누런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온다. 우리 몸에서 필요없다고 내 보낸 대변을 먹고 자라는 똥돼지도 누군가의 잔칫상에 오르고, 자연은 큰 순환 속에서 우리 몸도 언젠가는 누구에게 먹이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의 중심에 기(氣)가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