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박준영·이지예 기자] 16일로 예정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동이 무산됐다. 구체적인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와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 등을 두고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불협화음’이 감지된 가운데 정권 이양기 신·구 권력 갈등도 재조명되고 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8시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오늘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은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며 "실무 차원에서 협의는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간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정례 브리핑을 통해 동일한 내용을 전달했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만나겠다고 예고를 한 뒤, 회동을 4시간 앞두고 ‘전격 연기’ 방침을 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회동과 관련해서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윤 당선인 측의 장제원 비서실장이 논의해왔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 사면을 두고 양측이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자동차부품업체인 다스(DAS)의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삼성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을 확정받고 수감돼 있다.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문 대통령 임기 내 진행되는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갈등을 빚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번 회동에 대한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의 시각이 달랐다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이후 윤 당선인을 처음 보는 만큼 가벼운 상견례 자리라고 생각했으나, 윤 당선인 측은 이 전 대통령의 사면과 추가경정예산안 추가 편성 등 성과를 내기 위한 ‘회담’으로 봤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신·구 권력이 정면 충돌, 회동이 결렬되면서 정권 이양까지 삐걱댈 가능성이 커졌다”며 “결국은 ‘누구를 더 필요로 하느냐’에 대한 문제이고, 제대로 되든 안되든 정권은 넘어오게 돼 있기 때문에 갈등을 키운다면 손해 보는 쪽은 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선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원만한 정권이양을 위한 관례인데, 이례적이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상당한 부담을 안고 무리수를 두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권 교체 과정에서 신·구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7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은 통일부 해체 등을 두고 기 싸움을 벌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인수위는 기존 정책에 찬반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며, 호통치고 자기 반성문 같은 것을 받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갈등은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이어졌다. 두 사람은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등에서 부딪쳤고,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비서관과 행정관 등 10여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반면 15대 대선이 끝난 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 간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1시간가량 오찬을 진행하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 협정 이행 등에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