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제인 사면이 불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임기 막바지인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 사면을 단행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사법리스크 장기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그러나 당초 예상됐던 사면 관련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다. 늦어도 전날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에 소집 통보가 전달돼야 했지만, 법무부는 관련 지침을 전달받지 못했다. 사면 최종 권한을 지닌 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아 법무부 장관 중심의 사면심사위원회 소집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사면심사위 개최가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주말에도 사면심사위 개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의결은 김부겸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통해서도 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사면권을 가진 문 대통령의 ‘결심’이 서야만 가능하다. 이마저 끝내 불발되면 사면 권한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넘어간다.

재계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지난해 8·15 광복절 가석방 됐지만, 당초 재계의 요구는 사면이었다. 이번 국무회의를 앞두고도 경제5단체가 정부에 사면 청원서를 제출하며 기업인들의 ‘리더십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가석방 신분인 이 부회장이 취업 제한으로 정상적인 경영 참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출장을 위해선 법무부의 승인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등 제약이 있다.

특사가 불발이 되면 이 부회장은 오는 7월이 돼야 형의 집행이 종료된다. 하지만 이 경우, 취업제한 규정이 여전히 이 부회장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그의 혐의에 적용된 특경법 제14조가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5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 무보수 이사로 근무 중인 이 부회장이 등기 이사로의 복귀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재계가 이 부회장의 사면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대통령은 법률상 형벌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킬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

이 부회장이 취업 제한에 발이 묶이며 삼성전자의 투자도 위축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은 2016년 하만 인수를 마지막으로 잠잠하다. 성장동력 확보전은 올스톱 됐다. 굵직한 투자 프로젝트도 찾기 어렵다. 2030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를 목표로 세웠지만, 30%가 넘는 시장 1위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다.

경제인에 대한 사면은 찬성 여론이 높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이재용 부회장 사면은 68.8%가 찬성했다.

문 대통령의 경제인 사면 원칙은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대선 공약에서 비롯됐다.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을 한 번도 시행하지 않으며 결국 공약을 지키는 모양새다. 이 부회장은 뇌물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윤석열 당선인은 문 대통령과 다른 원칙을 고수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여러 차례 민간기업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친기업 행보를 확대해 왔다. 대선 전후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한 윤 당선인이 취임 이후 경제인 사면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삼성은 공식 입장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부회장 직속으로 신사업 TF 조직을 신설하며 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설 채비는 마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삼성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의 사면이 불발되면 신사업 TF 조직을 앞세운 M&A 등은 제한적으로 작동될 수밖에 없다.

재계에선 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관측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지난해 취임 직후엔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들을 백악관에 부르기도 했다. 올해 3월 백악관에서 주재한 반도체 대책회의에 외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를 초대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기간 중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4일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은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경제협력 토대를 만들 기회”라면서 “반도체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시점을 정치적으로 고려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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