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청와대...무더위에도 관람 열기 '후끈'
"전면 개방이라더니 일부 개방" 내부 비공개 방침엔 아쉬움도
靑 개방 사흘만에 관람객 231만명 돌파...관람 신청 연장

청와대 개방 사흘째인 12일 오후 2시 본관 앞 대정원에서 전통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청와대 개방 사흘째인 12일 오후 2시 본관 앞 대정원에서 전통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데일리한국 이지예 기자] 12일 오후 2시 청와대 본관 앞 거대한 잔디마당인 ‘대정원’에서는 한바탕 전통 공연이 펼쳐졌다. 최고 기온 29℃,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땡볕이 따가웠지만 잔디마당을 빙 둘러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이 가득했다. 공연 중 “얼씨구!” 소리가 나오자 시민들은 “좋다!”라고 호응하며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불과 3일 전까지 경내를 장악하던 엄숙하고 경직된 공기가 뜨거운 열기로 메워진 현장이었다.

최고 권위의 상징 대통령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청와대가 지난 10일 74년 만에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청와대 뒷길 북악산 등산로도 완전히 개방됐다. 1960년대 '김신조 사건' 이후 출입이 막힌 지 54년 만이다.

성북구에서 온 70대 노부부는 이날 한껏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청와대 내부로 경쾌한 걸음을 내디뎠다. 부부는 “대통령만 거닐던 곳을 내가 지금 걷고 있다. 감동적인 순간이고 꿈만 같다”면서 “대통령들이 남긴 역사적인 궤적을 따라 경내를 살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정문 앞에서 취재진에 사진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 관람객 발길 줄잇는 본관·관저·상춘재...“완전 아닌 '일부 개방'은 아쉬워” 

청와대 개방 사흘째인 12일 관람객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본관 앞 줄지어 서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청와대 개방 사흘째인 12일 관람객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본관 앞 줄지어 서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정문으로 들어서면 대통령이 집무를 보던 푸른 기와집, ‘본관’의 위엄찬 용모가 뒤로 펼쳐진 북악산의 기개와 절경을 이루며 경내를 압도한다. 청와대의 얼굴인 만큼 이곳은 단연 사람들의 발길이 쏠린 가장 뜨거운 곳이었다. 본관 앞에는 사진 촬영을 위해 관람객들이 30m가량 줄지어 서 있었다. 미지의 공간을 마주한 듯 곳곳에선 감탄섞인 환호와 카메라 셔터음이 섞여 들렸다.

그러나 통제가 잘 되지 않다보니 간혹 무질서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흠이었다. 문화재청 소속 진행요원에 따르면 개방 당일인 10일 사진 촬영을 하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소동도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진행요원 A씨는 “한 시민이 ‘잠시만 비켜주세요’라고 하니 다른 시민이 ‘내가 왜 비키냐’ 하며 실랑이를 벌이면서 이후 큰소리가 나더라. 우리한테는 통제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라 참 속상하고 난감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12일 오후 2시쯤 인수문과 그 내부에 펼쳐진 관저의 풍경.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오후 2시쯤 인수문과 그 내부에 펼쳐진 관저의 풍경. 사진=이지예 기자.

구름 같은 인파가 가득했던 또 다른 곳은 대통령과 가족이 생활하던 ‘관저’였다.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구중궁궐의 핵심이었던 '인수문'을 지나면 고즈넉하면서도 고상한 정취를 풍기는 한옥 관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선 “여기 정말 좋다”, ”안을 보여줘야 알지“ 등등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청취할 수 있었다.

모든 건물이 그러하듯 관저 역시 결정적으로 건물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관저에서 만난 대학생 조명준(20) 씨는 “도심 속에서 이 같은 정통미를 느끼긴 어렵다. 본관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는데 눈앞에 남산이 보이는 뷰는 더욱 황홀했다”면서도 “다만 ‘전면 개방’이라고 들었지만 ‘일부 개방’이었다. 내부를 무척 기대하고 왔는데 닫혀있어 아쉽다. 하루빨리 내부 개방을 통해 국민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산책로 앞에서 안내를 진행하던 요원은 “관람객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산책하던 곳이 어디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어디 있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술을 마시던 곳은 어디냐’ 등을 많이 물어보신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그동안 분리된 공간에서 대통령의 일상을 후담으로만 전해 들어야만 했던 만큼 역대 대통령들이 남긴 일상의 발자취를 현장에서 생생히 느끼겠다는 마음으로 청와대를 찾은 듯했다.

◇ “청와대 국민 품으로 돌려줘 즐겁고 행복”

12일 청와대 내부 모습.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청와대 내부 모습. 사진=이지예 기자.

일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청와대를 찾은 김정현(56세) 씨는 “아직 많이 둘러보진 않았지만, 외관은 사진으로 보던 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현장에서 권력과 위엄이 담긴 곳을 제지 없이 걸으며 상징적인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뜻깊다”고 말했다.

12일 오후3시쯤 상춘재의 외관.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오후3시쯤 상춘재의 외관. 사진=이지예 기자.

관저 아래엔 ‘봄이 계속되는 공간’을 볼 수 있었다. 경내 최초의 한옥 ‘상춘재’는 유독 밝고 화려한 운치를 자랑한다. 외국 정상들이 방한했을 때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장소로 쓰인 곳이다. 가장 아름답다는 정원 ‘녹지원’에는 토종 소나무, 반송이 우렁차게 기지개를 펼치고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와 120여 종의 나무들은 운치를 더했다.

12일 오후 4시쯤 영빈관의 외관.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오후 4시쯤 영빈관의 외관. 사진=이지예 기자.

‘영빈관’은 고상한 멋과 함께 품격 있는 자태를 뽐낸다. 외국 정상 등의 국빈 방문 시 공연과 만찬 등의 공식 행사를 진행하던 장소다웠다.

12일 오후 2시쯤 춘추관의 외관.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오후 2시쯤 춘추관의 외관. 사진=이지예 기자.

본관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10분 이상 걸어가면 기자회견이 열리던 ‘춘추관’이 나온다. 소통의 중심이 본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끝자락에 위치할 뿐 아니라 담벼락으로 분리돼 있다. 

미남불(왼쪽)과 오운정. 사진=이지예 기자.
미남불(왼쪽)과 오운정. 사진=이지예 기자.

관저 북쪽에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관람이 제한됐던 문화유산도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졌던 보물 ‘미남불’이 자리하고 있는데, 전날 한 관람객에 의해 파손된 불전함은 이날 볼 수 없었다. 몇 걸음 걸으면 조선 시대 지어진 정자 '오운정'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나무 사이로는 남산타워를 비롯해 서울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노원구에서 온 60대 정 모 씨는 퇴장하면서 “가장 좋았던 곳은 제일보고 싶었던 상춘재와 본관이었다. 오운정으로 올라갈 땐 너무 덥고 힘들었다”면서 “두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컸다. 진작 개방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국민의 품으로 청와대를 돌려줘서 매우 즐겁고 행복했다. 개방행사를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니 서울시민과 소상공인들도 반갑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2시간 관람 훌쩍 넘기는 경우도...쉴 수 있는 편의시설 있었으면”

12일 청와대 경내에서 바라본 정문의 출입구.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청와대 경내에서 바라본 정문의 출입구. 사진=이지예 기자.

시간이 지나면서 경내 관람객들이 점점 붐벼와 안내요원들의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최종 마감 시간인 오후 7시를 제외하곤 시간 단위별 퇴장 안내는 이뤄지지 않는 까닭이었다. 본래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 단위로 입장을 구분해 시간 단위별 최대 수용 인원을 6500명으로 제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출입구에 배치된 안내요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2시간마다 별도의 퇴장 안내를 하는 것은 아니어서 2시간을 넘기는 관람객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번 퇴장 시 재출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는 있었다.

“잔디에 올라가지 마세요”를 연신 외치던 진행요원은 “첫날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잔디밭이 망가졌다. 이후 관리에 대한 지적이 나와 녹지원과 대정원에서 얘기를 드리고 있다”며 “미남불 앞 불전함을 비롯해 종이로 만든 바위가 관람객에 의해 파손되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관리방침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협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청와대 개방 전 논란이 됐던 ‘관람권 중고거래’로 인해 무료개방의 취지가 무색해질 거란 우려도 현실화된 듯했다. 영빈문, 정문, 춘추문 등에서 일반 관람객들은 별도의 신원확인 절차 없이 ‘바코드’만 보여주면 입장이 가능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개방 전인 지난 9일 “가족 이외에 입장권 양도는 안 된다”고 설명하면서 “65세 이상 어르신·장애인이 아닌 개인·단체의 경우 전송받은 ‘바코드’만 보여주면 입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책을 묻자 “지침을 전달받은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관람권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장당 2만원에서 10만원에까지 팔리기도 했다.

12일 수궁터 앞에 마련된 관람객 휴게실.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수궁터 앞에 마련된 관람객 휴게실. 사진=이지예 기자

무더위를 피하거나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살벌한 더위가 이어지던 날 그늘을 찾지 못한 시민들은 손부채에 의지하며 더위를 달래고 있었다. 20대 조 모 씨는 “물 사 먹을 수 있는 매점·자판기 등 마땅한 편의시설이 없어 너무 불편하다. 휴게실 내부가 바깥보다 더워 도무지 쉴 공간이 아니었다. 한번 퇴장하면 재출입도 불가능해 물을 사올 수도 없었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길놀이 '신명의 길을 여시오' 풍물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길놀이 '신명의 길을 여시오' 풍물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한편 이날 대통령실은 이날 0시 기준으로 청와대 관람 신청인원이 231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뜨거운 관심에 따라 청와대 관람 신청을 다음달 11일 관람분(6월 2일 접수마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네이버앱·카카오톡·토스 등 3개 중 플랫폼을 선택해 관람을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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