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급증, 프리IPO 난항...투자금 확보 절실
"2025년 이후 기업가치 인정받는 시기 상장"
최태원 회장 "투자 기회, 혜택 줄 수 있도록 노력"
[데일리한국 이기정 기자]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한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상장과 관련해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물적분할 기업의 무분별한 쪼개기 상장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할 예정인 가운데 SK온이 규제기한을 피해 상장을 늦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산업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문화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온 상장에서도 이와 같은 기조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주주보호를 위해 기업의 물적분할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물적분할 후 상장을 계획하고 있던 기업들의 행보에도 상당한 제약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0월 SK온을 물적분할했다. SK이노베이션과의 사업 특성이 맞지 않고, SK온 성장을 위한 투자금 확보를 위해 자기주식 활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SK온은 물적분할 후 급성장하는 글로벌 2차전지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사업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채비율이 급등하고, 당초 투자금 확보를 위해 계획했던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가 난항을 겪는 등 주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SK온의 단기차입금은 4조2256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4990억원 대비 847%나 치솟았다. 지난 7월 SK온이 추가적으로 1조600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조달한다고 밝힌 것을 고려하면 현재 단기차입금 규모는 6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총부채 또한 급증했다. 올 상반기 SK온의 부채총계는 11조7716억원으로 직전 반기 6조8579억원 대비 2배 가량 늘었다. 이에 따라 SK온의 부채비율도 167%에서 300%까지 상승했다. 통상적으로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서면 재무건정성에 빨간 불이 켜진 것으로 평가한다.
SK온의 부채비율이 급증하는 원인은 설비투자 자금을 차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온은 계획했던 프리IPO가 기대보다 저조한 성과를 기록하면서 급한대로 단기차입금을 끌어쓰고 있다.
IB(투자금융) 업계에 따르면 SK온의 자금조달 주관을 맡은 한투컨소시엄(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에쿼티,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스텔라인베스트먼트)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배포한 투자설명서에서 SK온의 IPO를 오는 2027년에서 2026년으로 1년 앞당기고, 투자자 보장수익률을 기존 연 5.5%대에서 7%대로 올리기로 했다.
앞서 SK온은 기업가치를 약 35조원으로 설정하고 해외투자자를 중심으로 4조원 규모를 조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긴축 우려와 기업가치 고평가 이슈 등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자금 조달선을 국내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SK온은 기업가치와 목표한 투자금을 각각 22조원, 2조원 수준으로 대폭 낮췄다.
업계에서는 SK온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하락하자 SK온이 투자금 확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평가한다.
다만 SK온이 발표한 투자계획에 따르면 자금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SK온은 2023년까지 총 23조원의 국내·해외 공장 투자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미 투자한 7조7000억원을 제외한 15조원의 자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이에 IPO가 자금 확보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떠올랐으나 최근 금융당국이 물적분할 기업의 규제를 강화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5년 내 조기 상장이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주주 권익 제고방안'에 따르면, SK온은 지난해 10월 물적분할 했기 때문에 2026년 10월 안에 상장을 하게 되면 주주보호 노력을 금융당국에 입증해야 한다.
SK온이 당장 상장이 급한 입장은 아니라지만 실적이 본격화되고 시장에서 온전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빠른 시일내 상장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증권가에서는 SK온이 이르면 올해 4분기 분기 흑자전환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연간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K온이 2026년 10월 이전에 상장한다면 SK이노베이션이 금융당국에 피력할 수 있는 주주보호 방법은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이다.
또 이 기간 안에 상장을 추진한다면 거래소가 주주보호 노력을 평가해 상장을 제한할 수 있다. 아울러 주주들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분할 전 주가로 주식을 되팔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SK온은 분할 5년이 지난 후에 상장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주주들은 SK온이 기대에 못미치는 주주보호 정책을 제시하더라도 대응 방법이 없다.
SK온이 당초 제시한 상장 시기가 2025년 이후이기는 하지만 기간을 넘겨 상장하는 과정에 주주보호에 미흡한다면 금융당국의 규제를 피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태원 회장은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주들의 불안감도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은 이달 초 삼프로TV에 출연해 "SK온 상장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도 투자의 기회와 혜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금융당국의 규제와는 무관하게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공격적인 투자를 통한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향후 헝가리와 미국 조지아주 현지 공장에서 생산을 본격화하면 현금창출을 통해 차차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장 계획은 2025년 이후 회사의 가치가 시장으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상장 시 투자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당연히 마련하겠지만 아직 상장시점이 멀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금융당국이 주식매수청구권의 매수가격을 시장가격이 아닌 공정가액으로 변경하고, 신주인수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SK그룹이 최태원 회장의 공언에도 5년 후 주주보호 정책에 미흡하다면 금융당국은 기업규제 기간과 관련해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5년이 길다면 길고, 장기투자자들에게는 얼마 안되는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다만 이번 금융당국의 조치가 주주들의 피해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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