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 대두..."아직 괜찮지만 내년이 문제"
다올 '자산매각', 케이프 '조직개편' 등 선제 조치
채권 손실에 PF 신규딜 사라져...IB 감원 불가피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이기정 기자] 증권가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이미 긴축 움직임이 포착된 가운데, 증권사 IB(기업금융) 감원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연말을 앞두고 인원 감축, 자산 매각, 사업부 재편 등 수익성 확보를 위한 방책 마련에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실적 잔치를 벌였던 증권사들은 올해 정반대 상황을 마주했다. 잇따른 금리 인상에 국내 주식시장이 위축됐고, 이는 실적 악화로 이어져 대부분 증권사들의 실적이 반토막났다.

여기에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증권사들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였던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가 급격히 악화됐다. 특히, 사태 여파로 투자심리가 악화되면서 증권사들의 유동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올해 9월 말 3.27%였던 CP금리(A1등급 91일물)는 이달 15일 5.22%까지 급등했고, 같은 기간 국채금리(국고채 3년물)는 4.19%에서 3.75%로 하락했다.

아울러 단기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정도를 측정하는 CP-국채 금리 스프레드도 확대되면서 증권사들의 자금비용조달은 상승하고, 단기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당장 상황이 고강도의 긴축을 결정할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긴축에 나서는 이유가 현 시점에서의 문제보다는 향후를 대비한 선제적인 조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도 현재 증권사들의 유동성 및 건정성이 양호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증권사들의 유동성 비율은 125%로 나타났다. 이는 3개월 이내 만기 부채를 같은 만기의 자산으로 모두 상환하고도 25%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2분기까지 채무보증금 전액인 47조9000억원을 3개월 이내에 부채로 확정한다고 가정해도 조정 유동성 비율이 108% 수준으로 분석됐다.

곽준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대부분의 증권사들의 조정유동성비율이 100%를 상회해 개별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도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며 "순자본비율 측면에서도 증권사들의 건전성은 양호한 상태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긴축에 나선 증권사들도 이같은 상황임을 강조했다. 태국 현지법인 매각을 결정한 다올투자증권은 "내년 시장 환경의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라며 "현재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법인과 리서치 조직 폐쇄를 결정한 케이프투자증권의 경우에도, 인원 감축보다는 조직개편 및 인력 효율화 측면이 강하다. 케이프투자증권은 폐쇄되는 조직 소속 직원이 잔류를 희망하면 모두 수용할 계획이다.

케이프투자증권 관계자는 "현재 폐쇄 부서 직원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IB와 PI(자기매매) 등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이외에 인원 감축이나 긴축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부동산PF 신규딜이 사라지고 올해 대규모 채권손실이 발생하면서 증권사들의 IB 부서는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고액의 계약직 직원들과 재계약을 포기하거나, 이들 인력을 타부서로 옮기는 등의 조직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증권사 IB 고위관계자는 "올해 시장 악화로 계약 당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IB 인력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IB 인력이 많다고 생각하는 증권사들이 많기 때문에 상당수가 재계약을 맺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한 관계자는 "당분간 부동산PF 시장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단기적인 시각에서는 IB 축소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회복된다면 오히려 IB 인력 구하는게 늦어져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금융연구원은 향후 금리인상 기조 속에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조정될 경우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 연구원은 "자기매매나 부동산PF 등 특정 부문에 의존하고 있는 중소형 증권사는 자산 하락 충격에 더욱 취약할 것이다"라며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되면 건전성이 부정적으로 재평가되고, 결국 유동성 경색 상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