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데일리한국 안효문 기자] 1986년 등장한 1세대 그랜저는 말 그대로 성공의 상징이었다. 당시 차 한 대 값이 30평대 아파트 한 채 가격과 맞먹었을 정도로 아무나 살 수 없었던 차가 그랜저였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이 활성화되고, 현대차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면서 고급세단으로서 그랜저의 인상은 꽤나 옅어졌다. 그랜저는 지난해 누적판매 200만대를 돌파할 정도로 흔한 차가 됐다.

현대차가 지난달 7세대 완전변경차 ‘디 올 뉴 그랜저’를 출시했다. 신형 그랜저는 1세대를 오마주한 직선 위주의 실루엣에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전면 디자인과 다양한 첨단 기능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새 그랜저가 고급세단으로서 과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경기도 하남 일대에서 시승하며 상품성을 확인해봤다.

◇ ‘각그랜저’ 감성 공존하는 미래지향적 디자인

디 올 뉴 그랜저의 크기는 길이 5035㎜, 너비 1880㎜, 높이 1460㎜, 휠베이스 2895㎜ 등이다. 6세대보다 길이를 45㎜나 늘려 국산 세단 중에선 드물게 길이 5m가 넘는 큰 덩치를 자랑한다. 휠베이스와 리어 오버행(뒷바퀴 중앙부터 차 뒷면 끝까지 거리)도 각각 10㎜와 50㎜씩 확장해 웅장함을 강조했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전면부에선 현대차의 MPV 스타리아와 유사한 기다란 LED 램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대차가 ‘끊김없이 연결된 수평형 LED 램프(Seamless Horizon Lamp)’라 명명한 구조인데, 주간주행등과 방향지시등 등이 일체형 구조로 통합됐고, 기하학 무늬(파라메트릭 패턴)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함께 디지털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하다.

현대차는 일찍부터 IT기기에서 대세가 된 심리스(seamless) 디자인에 주목했다. 2019년 등장한 8세대 쏘나타부터 투싼, 스타리아. 6세대 그랜저 부분변경에 이르기까지 램프와 그릴의 경계를 허문 심리스 스타일이 최근 현대차 디자인의 큰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여기에 프레임리스 도어(문틀 없이 적용된 차문)와 플러시 도어 핸들(평소에 패널 안으로 수납되는 차 문 손잡이) 등으로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구현했다. 20인치 신규 휠 역시 고급감을 강조한다. 뒷좌석 공간을 드러내는 오페라 하우스나 넉넉한 휠베이스를 강조하는 비례감 역시 고급세단으로서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는 요소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실내는 과거의 향수를 최신 디자인 기조로 재해석했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같은 크기의 내비게이션 화면과 통합된 구조로 현대차의 현재 기술력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스티어링 휠 형태는 묘하게 구형 그랜저를 연상케 하면서도 중앙에 브랜드 로고 대신 4개의 발광 도트를 배치해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현대차에 따르면 4개의 점은 모스 부호로 현대차 로고 ‘H’를 의미한다.

기어 노브를 칼럼식(스티어링 휠 뒤편에 조작장치를 배치하는 구조)로 변경, 센터 콘솔 주변에 넉넉한 수납공간을 확보했다. 스마트폰 충전을 위한 무선패드를 배치했고, 차와 기기 간 무선연결도 지원한다. 실내 무드등 역할을 하는 앰비언트 라이트는 주행모드나 공기청정 모드 활성화 여부 등을 시각 정보로 운전자에게 알린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백미는 시트다. 나파가죽으로 감싼 운전석 에르고 모션 시트는 편안하게 몸을 감싼다. 널찍한 뒷좌석 공간은 1세대 그랜저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선사한다. 뒷좌석 리클라이닝 기능을 작동하면 보조석이 앞으로 당겨지며 공간이 한층 더 넓어진다. 전동식 블라인드도 뒷좌석 탑승객을 위한 배려다. 

◇ 미끄러지듯 달리는 승차감 ‘일품’

시승차는 V6 3.5ℓ GDI 가솔린과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36.6㎏f·m 등의 성능을 발휘한다. 경쟁차라 할 수 있는 기아 K8과 동일한 구성으로 전반적인 주행성향은 유사하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승차감 측면에서 신형 그랜저는 여느 후륜구동 세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그랜저의 주 수요층에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만듦새다. 노면정보가 꽤나 명확하게 전달되지만 운전자를 괴롭히는 수준은 아니다. 과속방지턱을 다소 과격하게 넘어가도 충격을 흡수하는 실력이 상당하다.

넉넉한 배기량의 가솔린 엔진은 출발부터 대부분의 가속상황까지 여유를 잃지 않는다. 운전자가 페달을 밟는 만큼 시원시원하게 힘을 쏟아낸다. 브레이크는 콱콱 서진 않지만 충분히 믿음직스럽다. 일상 주행 영역에서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몰 수 있는 세팅이 인상적이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연료효율은 복합 ℓ당 9.0㎞(AWD·20인치 휠 기준, 도심 7.7㎞/ℓ, 고속 11.2㎞/ℓ)로 인증 받았다. 도심에서는 5~6㎞/ℓ, 고속도로에서는 12~13㎞/ℓ대 효율을 트립 컴퓨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타력 주행 시 중립모드를 적극 활용하고, 내비게이션 정보를 통해 변속 타이밍을 최적화하는 기술을 통해 기름소비를 줄였다는 것이 현대차측 설명이다.

그랜저 3.5는 사륜구동 ‘H트랙’도 적용 가능하다. 평소엔 앞바퀴를 굴리다 주행상황에 따라 뒷바퀴에 힘을 배분하는 구조다. 시승은 맑은 날씨에 평지 위주의 코스에서 진행, H트랙의 유용성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 플래그십에 걸맞은 풍성한 편의·안전품목

시승차는 캘리그래피 트림으로 현대차의 최신 편의·안전품목을 대거 탑재했다. 전방 노면 정보를 미리 인지해 자동으로 감쇠력을 조정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이나 능동형 소음 제어 시스템 ‘ANC-R’ 등은 제네시스에서 소개했던 고급 기능들이다.

최신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역시 제네시스 브랜드와 동일한 수준으로 탑재됐다. 고속도로에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하면 대부분의 상황에 차가 알아서 반응한다. 물론, 아직까지 완전 자율주행차는 아니기 때문에 운전자는 전방을 주시하고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지 말아야 한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디지털 계기판을 탑재한 현대차그룹 신차들의 경우 방향지시등을 켜면 계기판에 좌우측 상황을 영상으로 띄운다. 또, 주차 등 상황에서 후진 기어를 넣으면 메인 디스플레이로 차 주변 360도 상황을 보여주는데, 버드아이뷰(차를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점) 뿐만 아니라 차를 후측면에서 보는 구도의 화면도 준비해 유용성을 높였다.

◇ 업그레이드 된 상품성...가격 인상 납득시킬 수 있을까

시승차는 소위 ‘풀옵션’으로 3.5ℓ 엔진 캘리그래피 트림에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2, 파노라마 선루프, 뒷좌석 VIP 패키지, 사륜구동 ‘H트랙’이 적용됐다. 이 모든 걸 누리려면 5605만원(개소세 3.5% 기준)을 지불해야 한다. 1세대 그랜저만큼의 부담은 아니지만 수입 중형세단까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가격이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사진=안효문 기자

그랜저의 고급화 전략을 소비자들이 얼마나 수긍할 지가 흥행의 관건이라 하겠다. 일단 초반 계약이 10만대 이상 몰렸다는 점에서 시작은 성공적이라 판단된다. 신차효과가 끝난 후 롱런할 수 있을지 시장 반응이 궁금하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