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효문 기자] 기업 입장에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증대는 뼈 아픈 일이다. 대비도 대응도 어려워서다. 국내 완성차 5개사는 올해도 힘든 한해를 보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수년째 커지는 외부충격 때문이다. 신차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애써 만든 차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도 쉽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다.
다만 부정적인 일만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쌍용자동차는 KG그룹 일원이 되며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냈다.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자동차는 수출 물량 확보로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경쟁력 있는 신차들 덕분에 소비수요가 꾸준한 점도 향후 전망을 밝게 했다.
◇ 반도체 부족에 길어진 '출고지연'
올해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여전히 ‘귀하신 몸’이다. 전장부품 비중이 증가하고, 전기차 판매가 늘면서 반도체 수요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2년 전 판단이 아쉬웠다. 비단 국산차 업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자동차 제조사들은 반도체 주문을 앞다퉈 줄였다. 신차 판매가 급락해서다. 이후 경기가 풀렸지만 자동차 회사들은 원하는 만큼 반도체를 수급할 수 없었다.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여력을 가전제품과 전자기기로 돌렸고,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 증산을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웠다.
국산차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편의·안전품목을 줄이거나, 반도체가 확보되기 전까지 미완성된 차들을 야적장에 쌓아두기도 했다. 출고 지연이 극에 달한 올 상반기엔 차를 세워둘 곳이 없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반도체는 물론 주요 부품 수입에 차질을 빚었고, 수출도 쉽지 않았다. 여기에 화물연대가 두 번의 파업을 단행하면서 국내 물류도 마비됐다. 트레일러를 운용하지 못해 단기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 차를 직접 몰아 출고장까지 옮기는 ‘로드 탁송’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올해 팔린 국산차 10대 중 9대는 현대차·기아
올 1~11월 국산차 판매 중 현대차·기아·제네시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88.1%에 달했다. 쉐보레, 르노, 쌍용차 등 중견 3사의 내수판매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결과다. 올해 내수시장은 3% 정도 감소할 전망인데,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자동차의 감소폭은 업계 평균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 내수판매를 늘린 제조사는 쌍용자동차가 유일하다.
신차효과가 결정적이었다. 중견 3사가 신차 가뭄에 시달리는 동안 현대차그룹은 아이오닉6, 팰리세이드(페이스리프트), 니로, 그랜저 등 굵직한 신차들을 쏟아냈다. 쌍용차 토레스는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브랜드 전체 성장을 이끌었다.
반면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는 마땅한 신차가 없었다. 한국지엠의 경우 올 4월 야심차게 선보인 신형 볼트 EV가 배터리 문제로 발목이 잡히며 기대만큼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형 SUV 타호는 가격과 수요층 등 태생적으로 판매 볼륨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르노코리아 XM3 E-테크 하이브리드는 나름의 반향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지만 투입 시기(10월말)가 늦어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 숨통 트인 해외판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2022년 자동차산업 평가 및 2023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산차 수출은 전년 대비 11.7% 증가한 228만대, 금액으로 환산하면 14.1% 늘어난 530억달러(한화 약 69조6980억원)로 예상된다. 대수나 금액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 규모가 지난해보다 0.7% 감소한 8432만대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해외시장에서 한국차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현대차와 기아가 전기차 등 친환경 신차를 중심으로 수출을 늘려가는 동안 중견 3사도 해외판매를 늘리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한국지엠은 창원공장에 9000억원을 투입해 GM의 글로벌 신형 CUV 생산 거점으로 재단장했다. 르노코리아자동차는 유럽시장에 하이브리드 수출을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쌍용차는 신차 토레스를 중심으로 중남미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 고물가에 재조명된 경차
국내의 엄격한 제원 규정과 낮은 가격 덕분(?)에 경차 시장은 국산차 업체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국산차 업체들은 수년동안 신형 경차를 출시하지 않았다. 찻값이 낮아 적극적으로 신차 개발비를 투입하기 어렵고, 수요도 소형 SUV 등으로 넘어갔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지난해 출시된 현대차 캐스퍼가 ‘깜짝 대박’을 터트렸고, 기아도 올해 레이 상품성 개선 등으로 경차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올 11월까지 국내 판매된 경차는 12만2565대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43.3% 급증했다. 국내 경차 판매대수가 연간 10만대를 넘어선 것은 2019년(11만3708대)이후 3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