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거부권…대통령실 "국가최고지도자로서의 결심"
양곡관리법 재표결 사실상 폐기…野, 대체 법안 제정 움직임
간호사법·노란봉투법 등에도 거부권 행사 시 악순환 반복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관계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관계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대통령실은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농민을 위하고 농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기 위한 국가최고지도자로서의 고심과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농업을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발전시켜 농가소득을 향상하고, 재구조화해 살기 좋은 농촌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 이후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김 수석은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향상하기 위한 농정목표에 도움 되지 않는 포퓰리즘 법안으로,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는 정의도 내려졌다"면서 "과잉 생산돼 쌀값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타격은 농민들이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0개 단체는 재논의에 들어갔고, 지금도 전량 매입되고 있는 상황 속 국민이 기댈 곳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할 일이 없는 만큼, 민당정이 쌀 수습과 농촌 발전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의결되기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재의결을 추진하겠다며 벼르고 있지만,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115석으로 전체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법안 상정권을 쥔 김진표 국회의장이 부결 가능성이 큰 법안을 다시 본회의에 올릴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체할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입법 밀어붙이기와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가 잇따를 경우 정국이 더욱 경색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외에도 간호사법, 방송법, 노란봉투법, 쌍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및 김건희 여사 특검) 등에 대한 강행 처리를 벼르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거부권 프레임을 씌워 민생을 정쟁화해선 안 된다"면서 "내년 총선까지 이런 강 대 강 대치 구도가 이어진다면, 국정을 주도하고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여당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야당과 쟁점 법안에 대한 합의를 모색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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