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교수 재직하며 세계무대 활약 400여명 제자 양성
‘산노을’ ‘초롱꽃’ 빅히트 등 한국가곡 르네상스 연 주인공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한국 성악계의 큰 별’ 테너 신영조 한양대 명예교수가 14일 오후 뇌경색 투병 끝에 경기도 수원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신 교수는 1970~90년대 TV·라디오 등을 통해 우리 가곡을 널리 알려 한국가곡의 르네상스를 연 주인공이다. 박인수(1938∼2023), 엄정행과 함께 '한국 3대 테너'로 꼽혔다. 33년간 한양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2009년 정년퇴임 때까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4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했다.
그는 1943년 9월 경남 창녕에서 출생했다. 중고교에서 야구 선수를 하다 장충고 시절 부상을 당했다. 이 때 병상에서 라디오로 들은 클래식에 빠져 성악가의 길을 걸었다. 중앙중 시절 함께 야구를 했던 사람이 백인천이다.
5형제 중 장남인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에 매달려 한양대에 입학했다. 1970년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잠시 중학교 음악교사 생활을 했다. 음악에 대한 갈증은 유학으로 눈을 돌리게 했고 독일 뮌헨 국립음악대학과 이탈리아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뮌헨 국립음대를 졸업하던 1975년 6월 리우데자이네루 국제 성악 콩쿠르에 입상하면서부터 프로 성악가로 발돋음했다. 그해 귀국해 국립오페라단의 '파우스트'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유려하게 하이C를 내뿜는 청아한 목소리로 선풍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한 평론가는 공연을 보고 “완전한 발군의 소리며 그의 목소리는 모든 소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이어 “기존의 다른 성악가들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자기소리’를 가진 성악가의 탄생이다”고 극찬했다. 또한 이 공연을 감명 깊게 본 고 김연준 한양대학교 이사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모교인 한양대 음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됐다.
귀국 이듬해인 1976년 '마술피리' '라보엠' '로미오와 줄리엣' 등 3편의 오페라에 출연하며 이름을 날렸고 이후 약 20년간 국립오페라단의 정단원을 역임하며 수많은 오페라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1976년 귀국 독창회 이후 2009년까지 국내외에서 100여차례 리사이틀을 열었다. 특히 1987, 1990, 1993, 199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단독 리사이틀은 당시로선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그가 교수로, 또 연주가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한국가곡의 대중화였다. 창작가곡의 발굴과 전파에 힘썼으며 연주인생 45년간 ‘MBC 가곡의 밤’을 비롯해 다수의 독창회에서 2부는 늘 한국의 사계절을 모티브로 한 우리 가곡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한 평론가는 “신 교수가 부르는 한국 가곡을 들으면 한편의 아리아 같다”라며 “이는 우리말로 쓰여진 우리 가곡의 각 시어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이미지를 그만의 정확한 가사 전달력과 수준 높은 테크닉으로 해석해내기에 가능했다”고 평했다. 그는 한마디로 한국 가곡을 독일 리트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예술가곡의 경지로 끌어올린 성악가였다.
실제로 박판길의 ‘산노을’, 김연준의 ‘초롱꽃’, 김동진의 ‘내마음’, 장일남의 ‘기다리는 마음’,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같은 곡들은 1980~90년대에 신 교수가 무대에서 자주 부르면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생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성악부문 단독 음악캠프인 ‘신영조 여름 음악학교’를 발족해 2006년까지 무려 16년간 전국의 성악도들에게 배움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이강호(라벨라오페라단 단장), 김우경(한양대 교수), 신상근(경희대 교수)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2001년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때 위험한 순간을 맞았지만 극적으로 재활에 성공했고 2008년에는 김우경과 함께 정년 기념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신상근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으로 신 교수를 꼽으며 “그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예술정신이 조금씩 파문을 불러일으켰다”고 고백했다. 아침 일찍 빈소를 찾은 이강호 단장은 "저에게는 늘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제 음악과 예술의 멘토였다. 너무 안타깝다. 한국 오페라 성악계의 큰 슬픔이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유족은 부인 이순호 씨, 딸 신교진·신명진·신경진 씨, 사위 문훈 씨가 있다. 빈소는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이며 발인은 1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춘공원묘원이다. (02)2290-9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