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출 국힘 정책위의장, 원내대책회의서 한전 사장 사퇴 요구
정승일 사장, 평소처럼 일정 소화…한전 임직원, 우려·불안·아쉬움 표출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왼쪽)이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승일 한전 사장(오른쪽)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전은 공식적으로 대응을 자제했지만 임직원들은 우려와 불만,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사진=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왼쪽)이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승일 한전 사장(오른쪽)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전은 공식적으로 대응을 자제했지만 임직원들은 우려와 불만,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사진=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여권의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 흔들기가 시작됐다.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눈 밖에 난 문재인 정부 인사 찍어내기란 분석이 있다. 정승일 사장은 평소대로 일정을 소화했지만 한전 내부는 가슴앓이가 심하다.

28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원내정책회의에서 정승일 한전 사장을 맹비난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발단은 한전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임직원들에게 상품권을 지급했다가 회수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롯됐다. 

박 의장은 이 사실을 ‘코끼리 비스킷 놀이’라고 언급하며 “직원들의 태양광 상업 비리 의혹, 한국에너지공대 감사 은폐에 대한 반성은 커녕 안이하기 짝이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한전 사장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 같다”며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박 의장의 발언은 돌출발언이 아니었다. 여권 수뇌부를 취재한 결과 어느 정도 예정된 발언이었다. 여권 수뇌부는 “한전 사장 사퇴 요구는 여권 내부에서 전부터 있었다”며 “한전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사퇴 요구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전 사장의 용퇴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28일 오전에 개최된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한전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박대출 정책위의장. 사진=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28일 오전에 개최된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한전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박대출 정책위의장. 사진=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박 의장의 발언을 전해들은 산업부와 한전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한전 내부는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다. 

정승일 사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위치에 있는 한전 관계자는 박 의장에 발언에 대해 우려와 불안감을 동시에 표출했다.

그는 “정승일 사장이 개인적으로 봐도 잘 하고 계신데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사장을 흔들면 회사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불안감이 든다”며 “20조원에 달하는 자구노력이나 장기 송변전설비계획 수립 등 한전이 할 일이 많은데 정 사장이 사퇴하면 한전 입장에선 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편으론 이런 일로 정 사장을 흔들어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한전 입장에선 여권의 계속된 정승일 사장 흔들기가 탐탁치 않은 것이다. 한전은 지난 정권부터 전기요금 정상화를 요구해왔지만, 정치권은 물가와 선거 표심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 요구를 억눌러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전기요금은 원가수준이나 원가보다 낮게 공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택용 전기의 경우 계속 수요가 늘고 있다. 전기에 대한 산업부문의 의존도도 심화돼 산업부문은 전체 전력소비의 5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전의 영업익에 치명타를 가했다. 전기요금이 연료비에 연동되지 않은 상황에서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 상승은 한전이 발전자회사로부터 전력을 비싸게 구입해 값싸게 파는 기현상을 낳았다. 결국 2021년 7조원대, 2022년 33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냈다. 이는 국내 채권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전은 전력 구입 비용을 한전채 발행으로 메꾸고 있는데 그 규모가 하루 1000억 원이라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과 정부간 당정협의회는 전기·가스요금의 정상화에 공감한다면서도 요금 인상 시점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대신 한전과 가스공사에 강도높은 자구노력만을 수차례에 걸쳐 요구해 한전 임직원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왔다. 특히 최근 여권의 공세는 같은 당 출신인 가스공사 최연혜 사장을 뺀 정승일 사장에게만 집중됐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시절 승승장구한 정승일 사장 찍어내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다. 

정승일 사장은 2016년 에너지자원실장 시절 기재부 출신 주형환 장관에게 산업부를 대표해 항의하며 옷을 벗은 적이 있다. 주 장관이 업무보고를 받을 때 산업부 공무원들을 과도하게 혹사시킨다는 이유였다. 당시 우태희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이 차관이었는데, 우 차관을 대신해 총대를 멨다고 알려지면서 산업부 선후배의 신임을 두텁게 얻게 됐다. 

이후 정 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2018년 1월 가스공사 사장으로 2년만에 금의환향했다. 같은해 9월 산업부 차관이 된 후 2020년 11월까지 재직한 후 다음해 6월 한전 사장으로 발탁됐다. 산업부 차관 출신으로 한전과 가스공사라는 대형 공공기관의 수장을 함께 지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정 사장은 언젠가 산업부 장관으로 발탁될 것이라는 전망을 부정하는 이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했고 산업부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이유로, 윤석열 정권 들어 표적이 됐고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대놓고 사퇴를 촉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한전에 따르면 정승일 사장은 이날 서울에서 예정대로 일정을 수행하고 있었다. 지역본부장들과 회의하면서 한전의 주요 현황과 자구노력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자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박 의장의 발언을 언론을 통해 알고 있지만 내색없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의 날 연휴를 앞두고 벌어진 여권 수뇌부의 사퇴 요구에 정승일 사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28일 정승일 한전 사장은 일정을 예정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6일 개최된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한 정승일 사장(가운데). 정 사장을 기준으로 왼쪽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오른쪽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이 앉아 있다. 사진=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28일 정승일 한전 사장은 일정을 예정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6일 개최된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한 정승일 사장(가운데). 정 사장을 기준으로 왼쪽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오른쪽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이 앉아 있다. 사진=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