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정상화는 '가격'과 '신호' 기능 회복을 의미

데일리한국 정치경제부 안희민 부장
데일리한국 정치경제부 안희민 부장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전기·가스요금 추가 인상이 코 앞에 다가왔다. 전기·가스요금 당정협의회가 11일 열릴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1월처럼 13.1원/kWh 인상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당정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큰 폭의 요금인상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여름철 전기요금 폭탄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우려해서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인 7원/kWh 안팎의 요금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이 가스요금보다 전기요금에 집중된 이유는 가스요금의 경우 작년 52.3원/㎥을 인상하고 정부가 미수금 회수계획도 밝혔지만, 전기요금의 경우 작년 19.3원/kWh, 올해 1월 13.1원/kWh 인상에 그쳐 한전이 요구한 51.6원/kWh 인상에 크게 못미치기 때문이다. 요컨데 가스요금은 국제 천연가스 가격의 가파른 상승을 재빠르게 반영했지만, 전기요금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전의 적자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세간에선 전기요금을 전기세라고도 많이 혼동해 부른다. 한국에선 전기요금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왔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가격'과 '신호'라는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격'이란 전기나 가스요금이 원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하는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는 가격이라는 의미다. '신호'는 기업 입장에서 사회 인프라에 속하는 전기와 가스가 미래 투자전략을 수립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전력수급상황은 매년 악화됐다. 특히 전력송변전설비는 주민수용성 악화로 육상에서 사업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지 오래다. 그래서 정부는 전남지역에서 생산된 잉여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해 전기고속도로라 불리는 초고압직류송전(HVDC)을 서해 바다에 설치할 계획이다. 태양광, 풍력의 확대로 기존 송변전설비에 유연교류송전시스템(FACTS)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도 설치하고 그리드 포밍 기술을 적용하겠다고도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업에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고 연구개발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전기요금이 '가격'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정상적인 요금으로 책정됐다면 송변전설비 보급과 신설비·신기술 수요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업은 전기요금 인상을 '신호'로 받아들이고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이 되거나 에너지 개선에 힘쓰며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했을 것이다. 정치권이 인상을 억제하며 억누른 것은 비단 전기요금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와 사업 결정, 미래 세대가 향유할 에너지도 함께였던 셈이다.

또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사용 전력량에만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송변전설비 확충이 어렵다면 전력량 요금과 함께, 기본요금을 올려 기업이 필요한 에너지를 전력에만 기대는 경향도 줄여야한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 합산으로 결정되는데, 기존 전기요금 인상은 전력량요금만 다루고 있어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사용전기의 52% 이상을 기업이 사용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정이 필요하다. 

낮에만 발전하는 태양광이 늘어나 기존 원전이나 화력발전과 충돌이 있다면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전기요금을 달리 부과하는 계시별 요금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권고되고 있다. 낮동안이나 주말, 공휴일의 전기소비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최근 산업현장에 밤낮, 휴일과 관계없이 가동되는 로봇이 많이 보급돼 있는데, 산업용 전기요금을 휴일 낮시간 때 값싸게 책정해 산업용 전기 소비를 휴일로 분산한다면 태양광발전 확대에 따른 덕커브 현상도 완화할 수 있다.

전기요금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전력시장이 처한 현실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표심에만 집중해 전기요금 현실화를 억눌러온 정치권이나 당장의 운영경비 절감만 추구하는 기업의 행태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전기요금은 단순히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도구다. 진정한 전기요금 정상화는 전기요금의 '가격'과 '신호' 회복임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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