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부터 편의·안전품목까지 탄탄한 상품성
[데일리한국 안효문 기자] 패밀리카에 대한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널찍한 실내공간과 다양한 편의기능, 가족들을 지켜줄 첨단 안전품목에 편안한 승차감 등 가족들을 위한 차를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꼽자면 두 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나들이에 유모차가 필수인 다자녀 가구라면 패밀리카로 7인승 이상 대형 SUV나 밴을 선택하는 가족 단위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이 분야에서는 기아 카니발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차로 전환이 빨라지는 요즘 디젤 엔진을 탑재한 MPV가 부담스럽다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한 기아의 대답은 주행 중 배출가스가 전혀 없는 대형 전기SUV 'EV9'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 현존하는 전기SUV 중 가장 널찍한 실내를 자랑하는 차다. 최신 전기차답게 첨단 편의·안전품목도 충실히 갖췄다. 경기도 하남에서 충남 부여까지 220여㎞를 시승하며 기아 EV9의 상품성을 확인했다.
◇ 시선 사로 잡는 큰 덩치와 미래지향적 디자인
EV9의 크기는 길이 5010㎜, 너비 1980㎜, 높이 1755㎜ 등이다. 전기차 영역을 넘어서 국내 판매 중인 모든 승용차 중 최상위다. 국산차 중 큰 차로 손 꼽히는 현대차 팰리세이드보다 15㎜ 더 길 정도다. 여기에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3100㎜로, 팰리세이드보다 200㎜나 더 확보했다. 내연기관차보다 공간 재단에 유리한 전기차 플랫폼(E-GMP) 덕분이다.
‘디자인의 기아’ 답게 큰 덩치를 둔하지 않게 잘 조각했다. 선을 화려하게 쓰진 않았지만, 윈도 디자인과 실루엣을 날렵하게 빼 제원표상 숫자보다 슬릭한 인상을 준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호랑이코 그릴’은 공기흡입구 없이 디자인 패턴과 LED 등을 배치해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LED 램프의 패턴은 온라인 샵(기아 커넥트 스토어)에서 취향에 맞는 버전을 구매할 수도 있다.
손잡이가 문 안으로 수납되는 ‘오토 플러싱 도어’, 사각형 디자인을 강조한 21인치 하이퍼 실버 휠 등도 첨단 전기차의 느낌을 강조한다. 동시에 높게 솟은 후드와 당당한 숄더 라인 등은 정통 SUV의 단단함도 전달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축이 필요 없다. 따라서 실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EV9의 공간 활용성은 한층 더 극대화된다. 짐을 싣고 내리기도, 다수의 사람이 탑승하기에도 충분한 공간이다. 다만 3열 시트는 성인이 장시간 탈 정도는 아니다. 기존의 3열 SUV와 마찬가지로 거주보다 적재를 고려한 구성이다.
실내 마감 소재는 EV9의 친환경성을 한층 더 극대화한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비롯한 10가지 지속가능한 소재로 실내를 감쌌다. 환경적인 의미도 크지만, 등이나 손 등 몸에 닿는 감촉도 만족스럽다.
특히 1열 시트의 착좌감은 고급 수입차와 견주어도 손색 없을 정도로 경쟁력 있다는 판단이다. 주행시간이 길어지면 알아서 마사지 기능이 활성화되고, 속도를 높이면 버킷 시트처럼 허리와 옆구리를 든든히 잡아준다. 쿠션감도 너무 무르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몸을 받쳐주는 덕분에 장거리 운전도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6인승을 선택하면 2열에서도 운전석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기능을 누릴 수 있다.
◇ 시원시원한 가속 성능에 잘 조율된 승차감 ‘엄지 척’
시승차는 4륜구동 어스 트림으로 시스템 최고출력 283㎾(약 380마력), 최대토크 600Nm(약 61.2㎏f·m), 배터리팩 용량은 99.8㎾h, 에너지 효율은 복합 3.9㎞/㎾h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454㎞로 인증 받았다.
덩치가 큰 만큼 실제 주행효율이 걱정됐지만 기우였다. 220여㎞를 달린 뒤 트립 컴퓨터에 표시된 주행 가능거리의 줄어든 숫자는 190㎞ 정도였다. 전기차의 특성 상 효율이 떨어지는 고속도로 주행이 길었다는 점, 높은 기온으로 공조기(에어컨)을 상시 가동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다.
차의 무게가 2.5톤을 넘어가지만 출발 가속은 산뜻하고, 속도를 붙여나가는 거동에도 여유가 넘쳤다. 주행 중 대부분의 구간에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못했다. 적어도 가감속에서 불만을 가질 운전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덩치가 큰 만큼 풍절음 차단에 공을 들였다. 덕분에 널찍한 공간에도 전기차 특유의 실내 정숙성이 한층 강화됐다. 넉넉한 힘에 조용한 실내, 탄탄한 하체가 만나면서 고속 주행에서도 불안감이 크지 않았다. 고속 영역에서 HUD에 표시되는 숫자와 체감 속도 간 간극이 있어 과속에 유의해야 했다.
EV9의 가장 큰 미덕은 하체 세팅이 아닐까 싶다. 전기차는 배터리 등 구성품 때문에 같은 크기의 내연기관차보다 무겁다. 그래서 차가 주저앉지 않도록 서스펜션 세팅을 단단하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승차감이 다소 희생되기도 한다.
하지만 EV9은 패밀리카로 쓰임을 고려한 듯 노면에서 오는 충격을 서스펜션이 잘 받아줬다. 노면이 고르지 않은 도로에서도 흔들림이 적었고, 높은 방지턱도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출렁이진 않지만 편안하고, 충격을 흡수하면서도 노면 정보를 잘 전달하는 세팅이 인상적이었다. 고가의 에어 서스펜션 없이 이 정도 성능을 구현한 점은 차나 브랜드의 평가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덩치에 비해 좌우 롤링이 적고, 급격한 회전구간에서도 자세를 다잡는 실력도 상당하다. 서스펜션 뿐만 아니라 전기차 고유의 강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회전 시 좌우바퀴의 토크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다이내믹 토크 벡터링’ 기술은 EV9을 보다 재미있고 안전하게 몰수 있게 돕는 숨은 조력자다.
◇ 가격도 성능도 비교 대상이 없는 차…새로운 ‘드림카’ 될까
기아 EV9은 국산 전기차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자랑한다. 시작가격(2WD 에어 트림)이 7728만원, 시승차인 어스 4WD는 8598만원이다. 최상위 GT-라인 8826만원까지 가격이 치솟는다. 각종 선택품목을 선택하면 차 값은 9600만원을 상회한다. 각송 세제혜택이 있다곤 하지만 일반적인 가정에서 구매를 결정하기 어려운 가격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형 전기 SUV라는, 해외에서도 이제 막 태동하는 분야에 기아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차의 상품성은 경쟁차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추후 자율주행 레벨3 기능 추가까지 예고된 EV9이 아빠들의 로망카로 등극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