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1일 롯데콘서트홀 공연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채” 선사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이 협연자 없이 베토벤·차이콥스키 교향곡 2곡으로 공식 데뷔무대를 갖는다. 내년 1월부터 5년간 서울시향을 이끌게 되는 얍 판 츠베덴은 단원들의 연주를 단기간에 끌어 올리는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 6·7월 서울시향 정기공연 입장권 조기 매진에 합창석까지 오픈
올해 1월 부상을 당한 오스모 벤스케 전임 음악감독을 대신해 포디움에 올랐던 얍 판 츠베덴이 오는 7월 20일(목)과 21일(금)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지난 1월 12일 판 츠베덴은 계획된 일정을 취소하고 이틀간 맹연습 뒤에 서울시향 무대에 올랐다. 갑작스럽게 벤스케의 대타로 투입됐지만 강렬한 지휘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서울시향의 잠재력과 연주력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올해 서울시향은 세계적인 지휘자·협연자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관심과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6월과 7월 정기연주회 입장권이 매진됐으며, 이어 추가 오픈한 합창석까지 모두 판매됐다.
최근 한국 출신의 젊은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두각을 드러내면서 진입장벽이 높았던 클래식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과거 클래식 주요 관람객이 40·50대 중년층이었다면, 최근에는 K클래식 붐으로 20대와 30대 관람객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공연장은 젊은 관객들로 채워지고 있다.
특히 해외 유명 연주자들은 한국 젊은 관객의 연주에 대한 집중과 몰입도가 매우 뛰어나고, 뜨거운 반응이 인상적이라며 다시 찾고 싶은 나라를 한국으로 꼽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서울시향 공연을 찾았던 젊은 관객들의 큰 함성과 박수는 7월 판 츠베덴의 첫 공식 연주회를 기점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공식데뷔
판 츠베덴은 19세에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RCO)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돼 17년간 악장을 역임했다. 1996년부터 본격적인 지휘자 활동을 시작해 2000년 헤이그 레지덴티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2005년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수석지휘자, 2008년 댈러스 심포니 음악감독과 안트베르펜 심포니 음악감독에 이어, 2012년 홍콩 필하모닉 음악감독에 취임했다. 2018년부터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지난 4월 판 츠베덴은 탁월한 예술적 업적으로 세계적인 콘서트홀 콘세르트헤바우에 기여한 음악인에게 주어지는 ‘콘세르트헤바우상’을 받았다. 또한 올해 패션 브랜드 펜디가 처음 제정한 ‘펜디 음악상(FENDI Music Award)’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판 츠베덴은 올해부터 서울시향과의 여정을 시작했으며, 지난 4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아주 특별한 콘서트’를 무보수로 지휘했다. 올해 1월 서울시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판 츠베덴은 내년 1월 음악감독으로 공식 임기를 시작해 5년간 서울시향을 이끌 계획이다.
판 츠베덴은 이번 서울시향과의 무대에서 협연자 없이 베토벤 ‘교향곡 7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으로 무대를 채운다. 지난 1월 브람스부터 바그너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서울시향과 ‘미리보기’를 선보인 그는 “이번 연주회는 청중과 오케스트라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소리를 추구할 것인지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향에 대한 청중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 올린 판 츠베덴이 이번 공식 데뷔무대에서 어떤 사운드를 들려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두 작품에 대해 “베토벤과 차이콥스키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 베토벤과 차이콥스키를 완전히 다른 색채로 소화해 고전에서 낭만으로 변화하는 적응력과 유연성을 느낄 수 있는 조합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채를 내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가겠다”는 판 츠베덴의 비전이 반영된 선곡이다. 1부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바그너가 ‘춤의 신격화(apotheosis)’라고 찬미했던 이 곡은 베토벤 중기의 걸작으로 초연 당시 함께 연주된 ‘웰링턴의 승리’와 더불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리드미컬한 추진력이 돋보이는 4악장과 중후하면서도 서정적인 2악장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네 개의 악장이 춤곡풍 리듬 위에서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며, 흔히 ‘디오니소스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거침없는 활력과 불타오르는 열기, 때론 돌진하고 때론 곤두박질치는 듯한 강렬한 흐름이 돋보인다.
2부에서 연주될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작곡가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잇는 ‘운명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차이콥스키가 남긴 일곱 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다변적이고 격정적인 작품으로 작곡가가 이 곡을 구상하면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의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곡가 특유의 어둡고 매혹적인 선율과 섬세한 관현악법 등이 어우러져 강렬한 감흥을 자아내며, 베토벤이 운명에 결연히 맞서는 데 반해 차이콥스키는 숙명에 굴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첫 악장을 여는 금관의 팡파르는 ‘운명’을 나타내며, 4악장에 이르러 팡파르가 다시 등장하며 떨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상기한다. 2악장은 고뇌와 우수에 젖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이어지며, 3악장의 흥미롭게 펼쳐지는 스케르초는 리드미컬하면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형식적인 면에서 교향곡 4번은 교향곡과 교향시의 경계에서 독일 교향곡의 전통을 벗어나려는 차이콥스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지난 1월 판 츠베덴은 “렘브란트 같은 무거운 색채도, 반 고흐의 화려한 색채도 다양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한다”며 레퍼토리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이런 지론이 반영된 이번 선곡에 대해 “두 교향곡이 들려주는 서로 완전히 다른 각각의 스타일을 주의해서 들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 발레·오페라·K팝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 진행
새해 첫 정기연주회에서 판 츠베덴은 브람스 작품과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에 이어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을 선보였다.
공식 임기는 내년 1월부터지만 사실상 올해부터 서울시향을 책임지게 되는 판 츠베덴은 서울시향의 레퍼토리를 확장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위대한 오케스트라는 카멜레온처럼 여러 다른 작곡가들의 색채를 구현해 내야한다”며 레퍼토리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강조한 그는 발레, 오페라, K팝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K팝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클래식 샘플링은 대중음악과 클래식 협업으로 장르 간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콘텐츠 개발로 이어지고 있으며, 서울시향은 SM엔터테인먼트와 2020년 6월 국내 최초로 교향악단과 엔터테인먼트 기업 간 업무 협약을 맺고 대중음악과 클래식 협업을 지금까지 다섯 차례 진행해왔다.
◇ 한국의 젊고 재능 있는 영아티스트 발굴 K클래식 위상 높여
대중음악과 드라마의 K컬처 열풍에 이어 K클래식 전성시대가 열렸다. 최근 한국인 아티스트들이 세계적 권위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휩쓸면서 K클래식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판 츠베덴은 서울시향 음악감독을 수락하게 된 동기에 대해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면서 강효 교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뉴욕필을 비롯해 저와 함께한 한국 연주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많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동아시아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판 츠베덴은 한국의 젊고 재능 있는 음악가를 선정해 시상하는 ‘펜디 음악상’의 세계적인 심사위원단을 이끌기도 했다. 이번 펜디 음악상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펜디 음악상 첫 회 수상자이자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첼리스트 최하영에 대해 “타고난 재능이 돋보이는 뛰어난 첼리스트로서 세계적인 수준의 솔로이스트로 거듭날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며 “음악계의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한국 음악 인재의 계보를 이어 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과도 공연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필과의 공연 시 매번 신곡을 소개하고 있는 그는 2025년 시즌에는 프로그램의 30% 정도는 창작 초연곡으로 채우겠다고 밝히며, 한국의 재능 있는 작곡가들에게 신곡을 위촉해 연주하는 일에도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특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만든 정재일을 ‘환상적인 작곡가’라고 언급하며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으며, 지난 5월 서울시향과 정재일 측이 만나 신곡 위촉을 위한 실무회의를 진행했다.
판 츠베덴은 “한국에는 훌륭한 가수들,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다”며 한국의 젊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과 전 세계에서 연주하면서 한국의 재능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또한 그는 “서울시향은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 높은 문화 대사가 돼야한다”라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활약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판 츠베덴은 7월 정기공연 공식 데뷔를 시작으로 8월 26일(토)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첫 야외 시민공연 ‘파크 콘서트’를 지휘하며, 11월과 12월 정기공연을 통해 서울시향과 다시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