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18일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구 회장의 모친과 여동생들이 제기한 상속 소송의 첫 재판이 열렸다. 재벌가에서의 상속 소송은 경영권이 왔다갔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재계 순위 4위로 자산총액 171조원의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상속 소송이 시작된 만큼 ‘세기의 재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LG가 구인회 창업주에서 구자경 전 회장, 구본무 전 회장, 구광모 회장으로 세 차례 총수 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 지분 등을 놓고 가족 간에 법적 다툼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장남이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고 형제들은 일부 계열사를 들고 분가하는 ‘장자승계 원칙’에 반기를 든 이들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2018년 40살의 나이로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지만 딸 밖에 없었던 큰아버지인 故 구본무 전 LG 회장의 양아들로 입적해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이번 상속 소송을 제기한 이들이 여성들(김영식 여사‧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구연수씨)이라는 점은 LG 집안의 남성중심적 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구 회장 자녀 세대로 상속되는 시기에 접어들면 이번 재판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LG가의 세 모녀는 故 구 전 회장이 상속한 주식 지분을 다시 분할하자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당시 故 구 전 회장의 유지에 따라 故 구 전 회장의 LG 지분 11.28%는 각각 8.76%(구광모), 2.01%(구연경), 0.51%(구연수) 씩 나눠졌다.
하지만 세 모녀는 이같이 분할하게 된 ‘전제’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바로 故 구 전 회장의 유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에 정해져 있는 배분 비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세 모녀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법정 상속 비율에 따르면, 故 구 전 회장의 배우자인 구 여사와 자녀들인 구 대표‧구씨는 각각 1.5대 1대 1로 배분받아야 한다.
문제는 故 구 전 회장이 사망한 지 4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상속인을 상대로 상속분을 가져오기 위한 소송은 상속권이 침해된 때로부터 3년 내에 제기해야 한다. 세 모녀가 재산을 침해받았다고 판단한 때로부터 이미 시간이 훨씬 지났기 때문에 적법한 소송인 지에 대해 법조계에선 의문을 갖는다.
LG그룹 관계자 역시 “상속은 상속인들이 수차례 협의해 2018년 11월 적법하게 완료됐다”며 “(소송이 가능한) 제척기간 3년도 지났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상속 협의의 근거가 된 故 구 전 회장의 유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배분을 위한 소송 제기는 정당하다는 것이 세 모녀의 주장이다. 즉, 세 모녀가 ‘2018년 상속재산협의분할’이 위법인지 제대로 입증할 수 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구 회장과 세 모녀 등 네 사람이 인감을 날인해 갖고 있을 일종의 ‘상속재산합의분할 협의서’가 잘못됐을 가능성은 적다. 세 모녀의 주장대로 협의의 전제가 되는 ‘故 구 전 회장의 유언’의 실체에 대해 법원이 집중적으로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재산 분할 차원의 문제로 보긴 어렵다. 상속재산이 1.5대 1대 1대 1로 나눠지면 세 모녀가 합한 지분이 구 회장 지분보다 훨씬 더 높아지기 때문에 LG그룹의 지배권이 달린 경영권 분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재계는 본다.
물론 세 모녀가 소송을 제기한 의도나 재산 배분에 대한 실질적인 의사에 대해 외부에 알려진 것만 놓고 속단할 수는 없다. 원만한 합의를 위해 양 측이 물밑에서 조율을 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는 재판 진행과정에서 차츰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재판 뒤 양측의 소송대리인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두 번째 재판은 오는 10월15일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의 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취약성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