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역할 변화' 尹 주문 50여일만에 조직 개편
인원 13% 감축해 536명…"조직 운영 효율성 차원"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한때 대북 교류 협력의 중심이었던 통일부가 대폭 쪼그라들었다. 교류 협력과 관련한 조직 4개는 폐지돼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폐합됐고, 정원도 81명이나 줄었다. 지난달 2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지원부가 아니다"라면서 역할 변화를 지시한 뒤 50여일 만의 변화다.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과 통일부의 설명이다. 남북 관계 경색 장기화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읽히지만, 일각에서는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에 방점을 두던 통일부가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남북교류협력 담당 실·국 4개 폐지…"통일정책, 유연·효율적 대응"
통일부는 23일 정부의 인력 운영 효율화 방침에 따라 정원을 617명에서 536명으로 81명(13%) 감축한다고 밝혔다. 조직개편을 추진한 뒤 구체적인 감축 인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원이 줄어들면서 '3실 3국 6관 1단 31과 4팀'에서 '3실 3국 5관 27과 6팀'으로 재편된다.
눈에 띄는 것은 신설된 '남북관계관리단'이다. 이는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분야를 담당하는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 등 4개 조직이 통폐합돼 만들어졌다.
남북 대화와 교류, 협력을 모색하는 조직에서 '교류·협력'이 빠진 것은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이 시행된 이래 처음이다. 앞으로 남북관계관리단은 산하에 5개 팀을 둔 채 남북 대화를 위한 교류 제도 개선 등의 업무를 할 예정이다.
이같은 변화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남북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사실상 대북 교류 협력이 존재감을 잃게된 데 따른 결과다. 다만 통일부는 남북 관계가 대화·교류 국면으로 전환되면 '추진단' 등의 형태로 신속하게 전환해 대화나 교류의 기능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조직은 약화했지만 인권, 정보분석, 통일인식 제고 기능을 조직은 강화됐다.
통일전략실에는 통일기반조성과가 설치했다. 통일 준비와 중장기 전략, 기획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상황에 따라 단호하면서도 일관된 메시지를 기획·관리하는 메시지기획팀도 신설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에 통일과 관련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통일협력국'을 신설하기도 했다. 그 밑에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통일인식확산팀 등을 뒀다. 지난달 취임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정보분석의 역량 강화를 주문했던 만큼, 정세분석국은 정보분석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국내외 유관기관, 민간단체와 정보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정보조사협력과도 신설했다. 기존 북한정보공개센터장은 '북한정보협력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장관 직속 '납북자대책팀'도 신설됐다. 납북자, 국군포로, 억류자 문제 해결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이 팀은 장관 정책보좌관의 지휘 아래 4~5급 팀장 등 5명으로 운영된다.
이 밖에도 통일부는 개방형 직위를 기존 5개에서 11개로 늘리기로 했다. 대외협력, 북한 인권, 통일교육 등 민간 전문가가 필요한 직위를 개방해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고위공무원단 중에는 통일교육원장 외에 통일 협력국장 및 북한인권기록센터장이 개방형 직위에 추가됐다.
통일부는 "남북 간 대화와 교류 협력이 장기간 중단된 남북 관계 상황과 급변하는 통일정책 환경에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 기능과 인력 재조정을 추진한다"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 통일'이라는 헌법적 책무와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고 한반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끌어나갈 수 있도록 조직을 혁신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 '존폐 위기' 겪은 통일부, 다시 격랑 속으로
통일부는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에 따란 존폐 위기를 겪어왔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북 포용 정책'에 따라 부처의 역할이 확대됐다. 통일부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했고, 2003년 420명이던 정원은 2007년 550명까지 확대됐다.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에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 등에 흡수통합하는 안을 발표했다.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단행되면서 전체 정원은 15%(80명)가 줄어든 470명이 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인력이 2013년 515명에서 2016년 551명으로 늘었지만, 대북 협상의 주도권이 안보실로 넘어갔다.
한껏 움츠러들었던 통일부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데 총력을 기울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다시 기지개를 켰다. 매년 정원이 늘어나면서 정권 말기인 2022년에는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정원이 6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통일부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다시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지원부가 아니다"며 통일부에 정체성 변화를 주문했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통일부 간부들을 상대로 고강도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겨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교류협력국 간부를 여러 차례 불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는데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은 이유를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한 실무 간부가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뒤늦게 전해졌다. 통일TV의 북한 방송 편집 보도와 북한인권보고서 부실 번역, ‘좌파 학자’에게 정책연구용역을 몰아줬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은 실무 간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사 중에 피감찰인이 쓰러진 사실이 없다”며 언론에 보도된 조사 사유가 정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며 “특정 조직을 축소하기 위한 게 감찰 목적이 될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 민주당 "'쑥대밭' 통일부…한심한 작태에 나라 골병 날 지경" 비판
통일부가 '효율성'을 이유로 조직을 대대적으로 손질했지만,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진보 정부에서 '남북 관계 정상화'에 힘썼던 만큼, 야당의 강도 높은 비판이 예상된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실이 교류협력과 평화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통일부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고 통일부 공무원들을 말 같지 않은 이유로 괴롭히고 있다"면서 "차라리 윤석열 정권의 극우적 철학 때문에 통일부의 업무를 축소한다고 솔직히 밝히라"고 지적했다.
이어 "통일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대북선전부’를 신설할 것이라면 당당하게 국회에 정부조직법을 제출하라"면서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로는 괴롭히는 한심한 작태에 나라가 골병 날 지경"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