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레이트 항공기. 사진=에미레이트항공 제공
에미레이트 항공기. 사진=에미레이트항공 제공

[데일리한국 박현영 기자] 아랍에미레이트(이하 UAE) 등 중동항공사들이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각국의 항공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항공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 UAE 측은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항공편 공급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한국과 UAE 간 항공노선에서 국내 항공사들은 약자에 속하는데, 이번 공급 증대가 이뤄질 경우 더 큰 피해를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UAE는 오는 12일부터 13일 양일간 서울에서 항공회담을 갖는다. 이번 항공회담의 핵심 의제는 양국 간 항공편 공급 증대다.

양국간 항공편은 아시아발 유럽행 항공 수요까지 겹쳐 있어, 항공편 공급이 늘어난다면 국내 항공업계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속 조만간 UAE 대통령이 방한하는 만큼, 윤석열 정부에서도 증편을 수용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중동항공사들이 국가로부터 대량의 보조금을 받아 챙기며 시장을 교란해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UAE에 이번에도 항공편 공급을 늘려주게 되면, 결국 국내 항공시장이 중동항공사들에 의해 잠식당할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 UAE 항공사, 환승수요 잠식 위해 공격적 공급 증대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한국과 UAE 간 항공노선에 있어 국내 항공사들은 약자일수 밖에 없다"며 "양국 항공협정상 주 15회를 운항할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대한항공만 218석짜리 A330을 주 7회 운항한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수요 부족으로 올해 4월에서야 재개했다. 반면 UAE의 경우 에미레이트항공이 초대형기인 517석짜리 A380을 주 7회 띄우고 있고, 에티하드항공도 327석짜리 보잉787을 주 7회 운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한-UAE 간 공급은 약 41만석 규모였고, 실제 양국간 수요는 공급의 36% 수준인 15만명 정도에 불과했다"며 "UAE 항공사들이 공급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이유는 한국발 유럽행 환승 수요를 잠식하기 위해서다. 실제 에미레이트항공 69%, 에티하드항공의 62%가 환승객"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에티하드항공까지 A380을 띄울 경우 하루 중동노선 공급석만 1000석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에티하드항공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3월까지 A380을 매일 운항한 적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하루 공급석 기준으로 에미레이트항공과 에티하드항공의 단 하루의 운항편이 대한항공의 주 5회를 운항하는 편수와 맞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항공사들은 만약 UAE의 증편 요구를 허용할 경우, 국적사의 중동 직항노선에 더욱 심한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UAE 간 주 7회가 추가 증편되면 연간 1300억원 수준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사진=대한항공 제공

◇ 대한항공, 아시아나 합병 앞두고 알짜 노선 반납 이어 중동 공세까지

UAE 등 중동항공사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에 대규모 증편을 할 경우, 가장 타격을 받이 받는 항공사는 대한항공이다. 특히 기업결합을 추진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경쟁당국에 알짜 노선과 슬롯을 반납한 상황에서 이같은 중동 항공사들의 시장 잠식의도는 뼈 아플 수 밖에 없다.

현재 EU 경쟁당국과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 중인 대한항공은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등 황금 노선의 운항을 두고 협상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동항공사들이 한국발 유럽행 환승 수요를 차지하게 된다면 대한항공의 피해는 커질 수 밖에 없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다른 산업과 달리 항공산업에는 국적기라는 용어를 쓴다. 이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로, 정부가 항공산업을 보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면서 "주요 국가에서 보호무역주의로 가고 있는 만큼, 한국도 자국 항공사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동항공사, 정부 지원 등에 업고 전세계 공정경쟁 체제 '흔들'

UAE 등 중동항공사들은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재정 부담에 대한 걱정 없이 국제항공노선을 확장하며 단기간에 몸집을 부풀리며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같은 보조금 수령 및 혜택은 공정경쟁의 틀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항공업계는 지적했다. 

UAE와 카타르의 경우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여년간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국영 항공사에게 520억달러(한화 약 66조원)의 비정상적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동조합 결성 금지, 근로자 권리 제한 등 제도적 장치로 낮은 인건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중동에 취항하는 다른 국적 경쟁항공사들이 당연히 지출해야 하는 비용인 소득세, 유류세 납부 의무도 부과하지 않았다.

이 같은 불공정 경쟁은 전 세계 항공사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 노선의 공급을 줄이거나 철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

미국의 경우 2002년 UAE와 항공자유화 항공협정을 체결했으나, 중동항공사들의 잇따른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다. 델타항공의 경우 2016년 애틀랜타~두바이 노선, 유나이티드항공 또한 같은 해 워싱턴~두바이 노선을 단항했다. 올해 3월에 들어서야 유나이티드항공이 주 7회 뉴욕(뉴어크)~두바이 노선을 띄웠지만, 이미 미주~중동 시장의 패권은 중동항공사에게 돌아간 뒤였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중동항공사의 저가 공세로 구주 노선의 수송객이 매년 대폭 감소해 어쩔 수 없이 2003년 로마 노선, 2004년 파리 노선, 2013년 프랑크푸르트 노선을 폐지했다. 미국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지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동항공사들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인해 유럽 항공사들의 실적악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중동노선 및 아시아행 노선의 운항을 잇따라 중단한 바 있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2015년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행 노선 20여개 운항을 중단했으며, 에어프랑스의 경우 아부다비, 도하, 제다, 첸나이, 하노이, 프놈펜 등의 운항을 잇따라 중단하는 등 심각한 타격을 받은 바 있다.

중동항공사 불공정 행위 대응 참고자료. 
중동항공사 불공정 행위 대응 참고자료. 

◇ 중동항공사들의 불법적 행태에 세계 각국 대책 마련

업계 관계자는 "UAE 항공사들은 경쟁사들의 직항 노선에는 덤핑에 가까운 가격 정책을 구사하는 대신 경쟁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노선에는 고가 전략을 고수한다"며 "실제 한국에서 두바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노선에는 대폭 할인된 가격의 항공권을 제시해 한국 국적 항공사들의 유럽 수요를 빼앗아가고, 국적 항공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아부다비 노선 등에는 비싼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같은 비정상적 경쟁체제가 이어질 경우, 미주 및 유럽 항공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 항공사들이 노선을 축소하거나 정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UAE 항공사들의 무분별한 진입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도 제한되고, 가격도 비싼 항공권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피해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같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세계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미국 항공사들은 2015년 2월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고, 중동 국가들과의 재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재협상 기간 동안 중동 항공사들의 미국 내 신규노선 취항을 잠정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결정은 미국 의회에서도 지지한 바 있다.

2015년 3월 독일과 프랑스 정부도 공동으로 중동항공사의 보조금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이들과의 공급력 협상을 재추진하는 한편, 보조금 금지규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같은 해 5월 EU와 중동국가간 공급력 개정협상이 필요하며, 이같은 협상이 완료되지 않는 한 중동항공사에 암스테르담 노선 추가 운수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중동항공사들을 제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2015년 12월 EU 집행위원회는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이 정부 보조금 수령으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어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항공협정 개정 추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 한국 항공산업 일자리 보호 등 국가기간산업 전략적 보호 조치 취해야

국내 항공업계에선 이같은 중동항공사들의 시장잠식으로 인해 인천공항이 허브공항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앞서 유럽과 대양주를 잇는 허브 공항이었던 싱가포르 창이공항이 이들 중동항공사들의 이와 같은 거센 공격에 밀려 이미 2인자로 밀려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항공사에 주 7회 운항횟수를 증대해줄 경우, 한국에서 약 1900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며 "미국의 경우 중동항공사로 인해 1개 노선이 폐지될 때 15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바 있고, EU 또한 중동항공사 공세로 2000년 이후 EU 항공사 전체 직원의 약 18.5%인 8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바 있다"고 전했다.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항공협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단기간의 경제협력이나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항공 등 국가기간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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