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신탁 정비사업 표준계약서‧규정’ 확정…사업투명성 확보
초기자금 직접 조달 의무화‧사업 추진시 주민동의율 문턱 높아져

서울 양천구 목동7단지 아파트 전경. 사진=목동7단지 재건축준비위원회
서울 양천구 목동7단지 아파트 전경. 사진=목동7단지 재건축준비위원회

[데일리한국 김하수 기자] 정부가 최근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서 확산하고 있는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칼을 빼들었다. 신탁 방식으로 추진 중인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 잡음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신탁사에 대한 책임과 역할 강화를 주문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주민·신탁사 간 공정한 계약 체결과 주민 권익보호를 위한 표준계약서 및 시행규정을 지자체 등 이해관계자에게 배포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신탁사가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단독으로 시행하거나 조합 또는 토지등소유자를 대신해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사업비 조달 문제로 지지부진했던 침체 사업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이후 도입됐다.

크게 신탁사가 정비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사업시행자’ 방식과 조합 업무를 대행하는 ‘사업대행자’ 방식으로 나뉜다. 사업시행자 신탁방식은 신탁사가 사업 시행의 주체가 되고 주민대표회의를 구성해 의견을 전달하는 구조로 추진된다. 사업대행자 신탁방식은 사업 시행의 주체는 조합이 역할을 하고 신탁사 그 외 업무를 대행한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가장 큰 장점은 초기 사업비에 대한 자금조달이 꼽힌다. 신탁사들 역시 원활한 자금조달을 강점으로 내세워 홍보해왔다.

하지만 신탁방식 정비사업장 곳곳에서는 시공사 선정 시 입찰보증금을 요구하고 있고, 이 입찰보증금은 사업비로 사용돼 왔다. 금액은 최소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한다.

이에 국토부는 신탁방식으로 추진 중인 정비사업지의 경우 입찰보증금을 사업비로 전환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초기 사업비를 신탁사가 직접 조달해야한다는 의미다. 단 건설사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신탁 수수료가 비싸다는 지적에 따라 신탁 보수도 단순 요율 방식 외에 상한액을 정하거나 정액으로 확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해진다. 주민들이 사업별 특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신탁 보수를 책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사업시행자 지정 전에 신탁사와 협약 등을 체결하는 경우 신탁 방식 추진에 대해 일정 비율 이상 주민 동의를 얻도록 했다. 구역 지정 이전에 예비신탁사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 7단지의 경우 정비사업 추진 준비위원회가 코람코자산신탁을 예비신탁사로 선정했으나, 단지 내 다른 재건축 추진 단체가 이에 반발하고 있어 갈등을 빚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신탁사들이 초기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선점 후 계약체결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다반사였다”면서 “일부는 주민 100% 동의가 없을 경우 계약해지가 어렵고, 해지 시에도 손해배상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제도 개선으로 주민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탁방식으로 추진 중인 정비사업지에서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신탁사가 조합에 손실을 가하는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신탁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은 최근 서울시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정비계획 확정 전에 시공사 선정에 나서고 사업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용지를 정비 계획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양아파트 재건축사업의 시공사 선정 절차는 무산됐으며 향후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신탁방식이 조합에 손해를 끼치거나 신탁사가 건설사와 공사비 협상에 실패해도 신탁사에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며 “신탁사의 손해배상 규정이 있지만 주민들이 시비를 가리기가 힘들고, 배상받기 위해서는 긴 소송을 거쳐야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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