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이다. 골목 중간쯤 접어들자 강아지 두 마리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낯선 방문객을 향해 목청껏 소임을 다한다. 앙크란 녀석은 소프라노, 투실한 녀석은 바리톤이다. 곡진한 대접 받는 애완견이 아니라 평범한 누렁이다.
요즘 세상에 목줄도 안 매고 개를 풀어 놓다니. 큰 개는 아니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내게는 위협적이다. 알고 보니 녀석들은 바로 내가 거처하게 될 옆집 강아지다. 두 녀석의 선제 방어에 골목 끝에 묶인 흰둥이까지 가세하여 마을이 쩌렁쩌렁 울린다.
시골 빈집을 구했다. 허술한 한옥이지만 트집 잡을 처지가 아니다. 날로 늘어나는 책과 잡동사니 보관할 곳이 시급하다. 마음 내려놓고 소박한 집에서 지내다 보면 정이 들겠지.
유지 보수하는 조건으로 거저 사용하니 십 년간 관리인이 된 셈이다. 거리가 다소 멀어도, 바람 방향에 따라 간간이 날아오는 우사 냄새도 감수하기로 했다. 대문 앞 텃밭은 뜻밖의 덤이다. 간단히 집을 수리하고 이사하던 날이다. 대문을 열어놓았더니 강아지들이 마당에 들어와 응가를 했다. 대문 닫아 잠글 핑계가 생겼다.
겨울엔 시골에 머무는 날이 잦았다. 동파 방지를 위해서다. 볕이 따스한 오후에 산책하려고 대문을 나서면 옆집 강아지들이 기다렸다는 듯 따라왔다. 붙박이 가구처럼 꿈쩍 안 하는 그 집 식구들과 달리 날마다 길을 나서는 새내기 이웃이 신기한 모양이다.
녀석들은 제 세상인 양 들판에서 종횡무진으로 달렸다. 서로 쫓고 쫓기며 장난을 하다가도 어느새 뒤엉켜 으르렁거렸다. 집에서 점점 멀어지자 까칠이는 슬그머니 왔던 길로 가버렸다. 복실이 혼자 호위무사인 양 내 뒤를 따랐다. 외진 산골이지만 녀석이 있어 위안이 되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옆집 강아지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듬직했다. 강아지 이름을 지어주었다. 깡마르고 체구가 작은 녀석은 까칠이, 털이 복스럽고 몸집이 투실한 녀석은 복실이라고. 곁을 주지 않는 까칠이에 비해 복실이는 인상이 무던하다.
눈은 우수에 젖은 듯 그윽하고 귀가 아래로 쳐졌다. 엉덩이 근육은 다부지다. 무엇보다 왼쪽으로 휘어진 다보록한 꼬리가 멋스럽다. 종종거리며 달리거나 냇가에서 목을 축일 땐 꼬리가 말아 올리듯 솟구쳐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날부터 복실이는 수시로 우리 대문 앞에 납작 엎드렸다. 눈을 게슴츠레 내리깔고 하염없이 나를 기다렸다. 대문 여는 소리만 들리면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따라나섰다. 모른 척 내버려 두면 늘 몇 걸음 뒤에서 간격을 유지했다. 내가 멈춰 서면 그도 멈추고, 먼 산에서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는 의리파였다. 이른 봄날 냇가에서 흙투성이 냉이를 다 씻을 동안 곁에서 기다려 주었다. 시내에 다녀오려고 가방을 메고 나가면 주차장까지 따라와서 배웅했다. 다시 시골에 가면 골목 중간까지 달려오지만, 짖기는커녕 꼬리치며 반겼다. 그 겨울에서 봄까지 복실이 덕분에 쓸쓸하지 않았다.
몇 개월 사이에 복실이가 성큼 컸다.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낯선 아저씨가 옆집에 와서 주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가 붙들어라" "자네가 하게. 주인이니까 물지는 않겠지" 담도 없는 집이라 서로 떠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개를 데리러 왔나 보다.
개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남의 집 신발을 물어가기도 하고 요란하게 짖어댄다고 주민들 원성이 높은 터였다. 처음부터 풀어놓고 먹이던 개여서 쉽게 붙들지 못했다. 낯선 아저씨는 그냥 돌아갔다. 녀석들이 낌새를 알아챘을까. 그 후로는 요란하게 짖지도 않았다. 나 또한 조바심이 생겼다. 갑자기 복실이가 사라질까 봐.
한동안 뜸하다가 시골에 갔다. 노인이 대부분인 마을은 늘 고요하다. 골목 중간쯤을 지나도 복실이가 보이지 않았다. 대문 앞까지 가도록 기척이 없었다. 불길했다. 옆집에 물으니 개장수가 데려갔다고 했다. 기어이 그랬구나. 가슴이 아릿했다.
어딘가 보신탕집에 팔려갔을 복실이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묵묵히 나를 따르던 녀석이 눈에 어른거렸다. 복실이 사진만 들여다보았다. 어차피 보내야 한다면 내가 없을 때 간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몇 주가 지났을까. 골목 끝 반장댁 흰둥이가 새끼를 낳았다. 눈망울이 또랑또랑한 강아지 네 마리가 철망에 매달려 밖을 내다보았다. 각각 색깔을 달리한 목줄에 방울이 달렸다. 모두 연한 갈색 귀가 순하게 아래로 쳐졌다. 세 마리는 몸통이 흰둥이고 한 마리는 누렁이다.
새끼 누렁이 이마에 화인처럼 박힌 자국이 선명하다. 복실이 아기 때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심증은 갔으나 확인하고 싶어 반장에게 물었다. 강아지 아빠가 누구냐고. 반장은 턱으로 옆집을 가리키며 “이 집 개가 한동안 와가 못살게 하디만….” 하면서 웃었다. 순간 배신감이 엄습했다. 나만 바라보는 줄 알았던 복실이가 그사이에 반장 댁 흰둥이와도 눈이 맞은 모양이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가 떠올랐다. 다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지배인 자보와 그의 연인 일로나가 부다페스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그곳에 취직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는 첫눈에 일로나에게 반했다. 자신이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를 선물하자 일로나 마음도 안드라스를 향해 움직였다.
차마 일로나를 포기할 수 없었던 자보는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그녀를 받아들인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다고. 셋의 오묘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복실이도 나를 따르던 순간만은 내게 진심이었겠지. 한편 온몸으로 받아주는 흰둥이도 필요했나 보다.
복실이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올랐다. 반장은 키우기 힘들다며 새끼 한 마리만 남기고 흰둥이와 나머지 새끼를 모두 분양했다. 시골에 갈 때마다 철망을 지키는 녀석에게 절로 눈길이 간다. 왼쪽으로 휘어진 복실하고 다보록한 꼬리가 볼수록 신묘하다.
복실이는 그렇게 제 할 도리를 다했다는 듯 마지막 눈을 감았을 것이다. 이 땅의 민초들이 자식을 낳고 죽고, 그 자식들이 다시 낳고 죽으며 끊임없이 종족을 지켜가듯이.
◆ 주요 약력
△계간 '문장'(2015)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현재 안동시 한 도시 한 책 읽기 도서선정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전통문학 연구위원, 안동문화원 향토문화 연구위원, 문장작가회 이사, 북코 낭독회 리더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