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외치 신경쓸 듯…尹 순방 예산 22억원 증가
강서 보선 패배·엑스포 유치 실패로 '정권심판론' 부상
전문가들 "내년 총선 결과 따라 尹정부 성패 달라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히어로즈 패밀리와 함께하는 꿈과 희망의 크리스마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전몰·순직한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제복 입은 영웅들의 자녀와 배우자 등을 초청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히어로즈 패밀리와 함께하는 꿈과 희망의 크리스마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전몰·순직한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제복 입은 영웅들의 자녀와 배우자 등을 초청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집권 2년 차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2023년은 그야말로 '숨 가쁜' 한 해였다. 그는 올 한해에만 13차례에 걸쳐 15개국(중복 제외)을 방문하며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냈다. 정상외교에서는 국가·기관·기업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투자를 따냈고, 해외 주요 기업 대표들과 만나선 국내 투자 유치를 당부했다.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을 일단락지으며 한일관계 개선을 발판 삼아 한미일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하며 공격적인 세일즈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잦은 순방에 야권 일각에서는 국가 예산을 과도하게 쓴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효과는 컸다. 각국과 반도체, 양자(퀀텀), 바이오, 배터리 첨단 과학기술 분야를 비롯해 협력의 폭은 대폭 확장됐다.

윤 대통령은 틈틈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다자회의에 참석할 때는 시간을 쪼개 양자 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하는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자본력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벽을 넘어서는 데는 실패했다. 내년 총선의 전초전으로 평가됐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이어 엑스포 유치전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큰 격차로 지면서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소통과 민생 중심으로 국정 운영에 변화를 줬다. 대통령실은 정책실장이 추가된 3실장 6수석 체제로 확대 개편했고,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위주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내각도 관료·전문가 출신으로 변화를 줬다. 반환점을 도는 집권 3년 차를 앞두고 국민이 체감할 '정책 성과'를 내는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13차례 순방…한일관계 회복 발판 삼아 한미일 3각 공조 강화

윤 대통령은 올해 13차례 해외 순방을 통해 15개국을 찾았다. 1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한 데 이어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3월에는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찾았고, 4월에는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또한 5월에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의를 가졌다.

7월에는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고, 8월에는 한미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찾아 3각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도출했다. 9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와 인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미국에서 열린 유엔(UN)총회 참석 일정을 소화했다.

10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국빈 방문했다. 11월에는 미국을 다시 찾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같은 달 윤 대통령은 영국을 국빈 방문하고 프랑스를 방문하는 등 순방 외교를 이어가다 이달 네덜란드를 끝으로 올해 해외 순방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윤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해외를 찾자, 야권 일각에서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 속 올해 책정된 순방 예산 249억원을 다 쓰고 예비비 329억원까지 추가로 끌어 쓴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총력전을 펼쳤던 2030 국제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경쟁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대 29라는 큰 표차로 지자, 야권은 '맹탕 외교'라고 비판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우리 외교안보와 경제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윤 대통령이 여러 정상과 만나면서 대한민국 최첨단 산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주목도가 높아졌다"면서 "국민이 (순방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 대한민국의 위상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미일 관계가 이전보다 안정화되고 돈독해진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국민이 의구심이 들지 않고,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의 노력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윤 대통령은 UAE에서는 300억 달러(약 40조원) 투자 유치 약속을 받아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에서는 202억달러(약 26조원) 규모의 MOU 및 계약 성과를 거둬냈다. 가장 최근에는 반도체 첨단 제조 장비를 독점한 네덜란드와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는 성과도 거뒀다.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관계를 전환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우리 정부가 대신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한 뒤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됐다. 12년간 멈춰있던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는 완전히 복원됐고,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해소했다.

이는 곧 한미일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게 해주는 디딤돌이 됐다. 한미일 3국은 정상회의를 통해 지역 내 다양한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안보 협력체로 거듭난 것은 물론 경제 분야의 협력도 제도화했다. 한일관계와 함께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며 전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된 대외정책을 펼쳤지만, 대(對)중국 관계에 대한 부담은 늘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이른바 '미국 베팅' 발언 등 부침이 이어지면서 결국 한중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윤 대통령은 내년에도 적극적으로 해외 순방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은 내년 4월에 치러질 총선 등을 고려해 상반기에 계획된 일정 일부를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내년도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편성된 예산은 올해보다 22억원 많은 271억1300만원이다.

윤 대통령도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를 열고 올해 13차례 진행한 국외 방문 일정을 추진한 데 대해 "순방이 곧 일자리 창출이자 민생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동맹 결성은 첨단기술 협력 분야에서 올해 얻은 가장 중요한 결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를 외교의 중심에 두고 많은 기업인들과 함께 쉴 새 없이 함께 해외시장을 누빈 것은 ‘순방이 곧 일자리 창출이자 민생’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면서 "함께 해외시장 개척에 동행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간의 협력체계가 구축된 것도 큰 성과"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중랑구 중화2동의 한파 시기 취약 가구를 방문, 어르신과 대화하며 손을 잡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중랑구 중화2동의 한파 시기 취약 가구를 방문, 어르신과 대화하며 손을 잡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강서 보선 패배 이후 국정 기조 '민생·소통' 중심으로 전환

외치에서 한미일 3국 협력 제도화 등의 성과를 내놓은 윤 대통령은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선 '이념'을 중심에 뒀다. 지난 6월 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에서는 "반국가 세력들은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며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 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8월 광복절 축사를 하면서는 "우리는 결코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같은 달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는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아직도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의 거취를 둘러싼 여야 간 이념 논쟁이 불붙으면서 '공산 전체주의'와 '반국가세력'은 윤석열 정부의 수식어로 자리 잡는 듯했다.

기조는 지난 10월 총선에 앞서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가 나온 뒤 전환됐다. 수도권 민심을 엿볼 수 있었던 만큼 여야 모두 총력을 기울였지만, 국민의힘이 17%포인트 차로 패배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념 중심의 국정 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윤 대통령은 '소통'과 '민생 현장'을 강조하는 행보를 펼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를 경험한 그달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고,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아선 야당 의원들에게 먼저 찾아서 악수를 청했다. 타운홀미팅 형식으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소상공인대회에 참여해 '따뜻한 지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울러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이달 21일에는 서울 중랑구의 한 다세대 주택을 찾아 독거노인을 살피고 소외계층에 대한 한파 대비 보호 대책을 점검했다.

대통령실에도 변화를 줬다. 정권 출범과 함께 폐지된 정책실장이 부활하면서 대통령실을 3실장 6수석 체제로 확대 개편했다. 2024년 새해를 앞두고선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해 정책실장과 안보실장 자리를 모두 교체하는 인선을 단행하기도 했다. 김 비서실장의 자리는 이관섭 정책실장이 임명됐다. 공석이 된 정책실장 자리에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공석이던 안보실장에는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각각 내정됐다.

내각도 개편했다. '총선용 교체'로 시작했지만 '검찰 중심', '서울대 일색'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다양성이 보완됐다. 장관 후보자에는 여성 3명이 지명됐고, 공직과 학계 등 전문가의 비중도 높아졌다. 집권 3년차를 앞두고 정책과 경제에 집중해 국정 운영을 펼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중구 국제시장 일원을 방문, 환호하는 부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중구 국제시장 일원을 방문, 환호하는 부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전문가들 "중도층 사로잡을 민생 정책에 집중해야"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에 변화를 준 이유는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거야(巨野)의 정치 공세로 국정운영이나 민생법안 처리에 제동이 걸린 상황을 뒤집을 카드는 '총선 승리'뿐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선거에서 승리, 남은 임기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윤 대통령이 '민생'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해외 순방에 대한 비판이 높아진 만큼,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의 역동성을 강화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의 2023년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한 해'라고 표현했다. 각종 정치적인 이슈에 가려 대표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최 소장은 "민생은 곧 총선 결과"라면서 "2030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진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나 주택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민생 정책을 내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실질 소득이 전혀 늘지 않고 있는 상황 속 고물가 체제가 이어지면서 중산층의 몰락이 현실화하고 있다. 내년 선거는 결국 경제로 판가름 날 것"이라면서 "경제에 초점을 맞춰 국정을 운영하고, 야당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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