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주도 국회 통과 후 21일만에 다시 국회로
취임 이후 거부권 행사 9번째…역대 최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 "마지막 호소 외면"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9일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지 21일 만으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9번째로 늘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대통령실이 언론 공지를 통해 전했다. 이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같은 날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심의·의결한 데 따른 것이다.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며 "검경 수사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추가적인 조사를 위한 별도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국민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특조위에 부여된 권한과 구성 방식 등을 문제 삼으면서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핼러윈을 앞둔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의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법안이다.
이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가결돼 지난 19일 정부로 이송됐다. 다음달 3일이 처리 시한이었으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정부 이송 11일 만에 다시 국회로 돌아가게 됐다.
헌법 제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이의가 있으면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로 돌아간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다시 표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 표결 시점은 국회의장이 정한다. 표결에서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법안이 가결된다. 대통령은 법안을 다시 거부할 수 없어 법률로 공포해야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재석 298석의 3분의 1이 넘는 113석을 갖고 있는 만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재의결에서 가결되려면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취임 이후 5번째, 법안 수로는 9번째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헌법 가치에 반하는 법안과 이해당사자들의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법안, 포퓰리즘 등으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왔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 등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까지 고민이 깊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중 수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데다 특조위가 특별검사(특검)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등 위헌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유가족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정부는 피해자와 유족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총리실 소속의 10.29 참사 피해지원위원회(가칭)를 구성해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피해지원 종합대책과 그 세부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책에는 △피해자 대상 생활안정지원금 및 의료 간병비 확대 지원 △민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 확정 전이라도 신속한 배상 등 재정적 지원 △피해 근로자의 치유 휴직 지원 등 심리 안정 프로그램 운영 등 일상 회복 지원 △희생자 추모시설 건립 △이태원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 마련 등이 담겼다.
방기선 국조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10.29 참사 피해지원종합대책을 범정부로 추진해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과 희생자에 대한 예우와 예우에 온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일관되게 정쟁 대신 '실질'을 지향해왔으며 그것이 정부의 변치 않는 충심"이라며 "이제 정부는 더욱 낮은 자세로, 더욱 치열하게, 같은 목표를 추구해 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국무회의의 거부권 건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마지막 호소마저 외면했다"고 비판하면서 국회에 특별법 처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