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의정 갈등에 다시 충돌 조짐…韓 "국민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의료 개혁 현안을 담아낸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총선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의료계가 합리적이면서도 타당한 방안을 가져온다면 논의하겠다며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핵심 쟁점인 '2000명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해선 물러설 뜻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대국민담화에서 '의정(醫政) 갈등'의 해법이 나오길 기대했던 국민의힘은 망연자실한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지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론이 힘을 받으면서 여권 내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 속 주요 변수로 떠오른 의정 갈등의 해법을 두고 당정이 다시 한번 충돌할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尹, '의대 2000명 증원' 방침 고수…"실패 반복 안 해"

윤 대통령은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고,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하여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이고,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면서도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증원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료계를 향해선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 있다"면서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 없이 힘으로 부딪혀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는 시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법 집단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합리적 제안과 근거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려은 "애초에 점진적인 증원이 가능했다면, 어째서 지난 27년 동안 어떤 정부도, 단 한 명의 증원도 하지 못한 것이냐"면서 "27년 동안 반복한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 대통령은 논의가 부족했다는 일부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을 왜곡했다"면서 "급증하는 의료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은 8800여명의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치 행정처분도 법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1일 부산 연제구 연산역 앞에서 김희정(부산 연제구)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1일 부산 연제구 연산역 앞에서 김희정(부산 연제구)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尹 '의료개혁' 담화에 與 불만 폭발…탈당에 대국민 사과요구까지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 속 윤 대통령의 진일보한 메시지를 기대했던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의료 공백 확대에 대한 반성과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의정 갈등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통해 '총선 필패' 위기감만 고조시켰다는 지적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이날 부산 남구에서 지원 유세를 하던 중 윤 대통령이 의료 개혁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자 "의사 증원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정책이고 반드시 해내야 할 정책"이라면서도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숫자에 매몰될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한 위원장은 "우리 국민의힘은 증원 숫자를 포함해 정부가 폭넓게 대화하고 협의해서 조속히 국민을 위한 결론을 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며 "저희는 국민이 원하는 그 방향대로 정부가 나서주기를 바란다. 정부 여당으로서 함께 그 노력을 같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TV조선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기 전 대통령실에 의대 증원 규모와 관련한 '유연한 자세'를 요청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4일에도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단을 만나 의정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바 있다.

안철수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국민의 피해가 커질수록 국민들은 결국 정부·여당을 원망할 것"이라며 "국민들이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낮은 자세로 다시 시작하자"면서 의료계에는 의료 현장 복귀를, 정부에는 의대 증원 규모 재논의와 책임자 경질 등을 촉구했다.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 함운경 후보는 윤 대통령에게 탈당을 촉구했다. 함 후보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쇠귀에 경 읽기'라고 평가 절하하면서 "국민의 생명권을 담보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의료개혁을 누가 동의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는 윤 대통령에게 기대할 바가 없다. 행정과 관치의 논리에 집착할 것 같으면 거추장스러운 국민의힘 당원직을 이탈해 주길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정운천 후보는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내각이 총사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는 같은날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2000명이라는 수를 만고불변인 것처럼 고수하는 것은 국민의 눈에 불통의 이미지로 비친다"며 "의료 개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정 운영의 난맥상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내각 총사퇴까지도 고려한 쇄신의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일 경기 성남시 한 동네의원에 주 40시간 단축 진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일 경기 성남시 한 동네의원에 주 40시간 단축 진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정갈등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여당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지만, 국민들의 피로감 역시 극대화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서울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8일부터 2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1명에게 의대 증원에 관해 물은 결과(휴대전화 면접방식,응답률 13.2%, 오차범위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자의 65%가 ‘정부와 의료계가 협상을 통해 증원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원안대로 5년간 매년 2000명씩 총 1만 명을 늘리는 방침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2000명 의대 증원' 방침을 고수, 한 치도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윤 대통령이 의료계에 대화의 손을 내민 것은 이전보다 전향적인 자세다. 하지만 50여분 동안 담화문을 읽으며 의료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던 만큼, 총선을 앞둔 여당과 후보들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차별화된 자세로 나아가야만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을 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앞으로 총선까지 9일이라는 시간 밖에 없지만, 현재로선 한 위원장이 분위기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면서 "윤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는 등 국민 눈높이에 맞는 비판적 시각으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대하지 않는다면, 이번 선거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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