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표준안' 마련 등으로 협회 위상 제고
ISO인증 등 오프라인 교육 강화 위한 '연수원' 개원
'민주당 돈봉투 살포' 강래구 전 회장 이후 취임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묵묵히 원칙을 지키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욱희 감사협회장(대한지방행정공제회 감사)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대한지방행정공제회에서 '감사(監査) 업무를 하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학연이나 지연, 정치적 신념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판단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면서 이같이 답했다.
이 회장은 강래구 전 한국감사협회장이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돈봉투 사건'의 중간 전달책으로 지목된 뒤인 지난해 6월 취임했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대표하는 감사협회가 '비리의 온상'으로 비춰진 상황에서 '위상 제고'라는 숙제를 떠안고 협회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울 법도 했겠지만, 이 회장은 큰 부담은 없었다고 밝혔다. 조직의 감사이자, 감사인을 대표하는 협회장으로서 본연의 업무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 회장은 취임 이후 협회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공공기관, 사기업,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각종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내부통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표준(안)을 만들었고, 관련 용역도 신설해 컨설팅 서비스도 다각화했다. 또한 온·오프라인 교육을 통해 감사인들의 전문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내부감사 경진대회'를 열어 감사인 스스로의 전문성을 평가할 기회도 마련했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협회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둘씩 추진하니 자연스럽게 협회의 위상도 살아나고 있다"면서 "주변에서 '협회가 많이 변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직의 규모와 국가의 위상에 맞는 감사와 내부통제 기능이 없인 성장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낙하산 인사가 아닌 전문가를 선임해야 조직(기업)과 국가의 투명성·건전성을 제고할 수 있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면서 "앞으로 한눈팔지 않고 감사로서 해야 할 역할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한국감사협회, 어떤 곳인가?
"1977년 창립해, 2005년 감사원 소관 사단법인 한국감사협회로 출범했다. 세계내부감사인협회(IIA)의 회원국으로 승인된 한국의 대표적 감사연구단체로, 국제기구의 일원이기도 하다. 협회는 내부감사와 관련된 이론과 실무의 조사·연구를 통해 내부감사제도를 발전시키고, 내부감사업무를 질적으로 향상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직무능력 향상 교육을 벌이고 있고, 대학교와 공동으로 산학협력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국내·국외 감사인대회 개최 및 참여도 하고 있다. 회원은 다양한 분들로 구성돼 있다. 법률의 요구에 따라 임명된 감사(위원)와 감사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세계내부감사인협회(IIA)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국제공인내부감사사(CIA)와 이를 준비하는 수험생, 내부감사를 강의하는 교수님 등이 있다."
▶ 우리나라의 감사 문화, 현주소는 어떠한가?
"‘내부감사’는 매우 높은 도덕성과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직역이지만, 전문 영역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 임원(감사 포함)은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선임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하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외부감사의 한 영역인 회계감사 분야는 거의 국제적인 수준에 오른 반면, 내부감사 영역은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관련 서적도 손에 꼽을 정도이고, 이를 가르치는 대학도 없어 외국의 서적과 제도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민간, 정부 및 공공기관을 막론하고 횡령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감사, 내부통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혹은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화 하고 있어 감사, 내부통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고 있지만 문제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의 규모와 국가의 위상에 맞는 감사와 내부통제 기능이 없이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감사 영역에는 낙하산 인사가 아닌 전문가를 선임해야 조직(기업)과 국가의 투명성·건전성을 제고할 수 있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 취임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데 그동안 거둔 주요한 성과를 꼽자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사업들을 많이 추진했다. 최근 각종 횡령 사건이 발생해 내부통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내부통제 표준(안)’을 제정해 배포했다. 또한 ‘내부통제 부문에 대한 용역’도 신설해 컨설팅 서비스를 다각화했다. 감사인 스스로의 전문성을 평가할 기회도 제공하기 위해 ‘내부감사 경진대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연말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더 나은 미래로의 도약’을 주제로 한 2024 한국감사인대회를 개최했고, 350명이 참석했다. 이 정도 인원이 참석한 행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월에는 감사인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감사협회의 숙원사업이었던 연수원도 문을 연다."
▶ 감사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객관성, 전문성, 윤리성 등이다. 감사를 하는 데 있어 타협을 해서도, 다른 사람의 판단에 종속되는 일이 발생해서도 안 된다. 또한 학연, 지연, 정치적 신념 등에 따라 감사 처분이 달라져서도 안 된다. 아울러 전문성이 없으면 감사에 대한 신뢰나 수용도가 떨어질 수 있어 내부감사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 감사인은 조직과 업무수행에 대한 잘못을 밝히고, 이에 상응하는 시정·개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끊임없이 신뢰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할 것 같다. 협회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감사이론과 실무교육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오프라인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5월에는 연수원을 열 예정이다. 또한 ISO 인증과 같은 국제 전문 인증 교육기관이나 유관 교육기관과의 공동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 이러한 노력에도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내부통제에 대한 오해와 함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많은 분이 내부통제는 전문가가 하는 일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내부통제는 임직원 모두가 각각 각종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하는 업무 그 자체인데, 남의 업무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보니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부통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업무 분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지출 원인행위와 지출 행위 및 회계처리는 각각 철저히 분리되고 감독(통제)돼야 한다. 하지만 이 기능이 한 사람에 의해 수행됐기 때문에 대형 횡령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 강래구 전 한국감사협회장이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돈봉투 사건'의 중간 전달책으로 지목돼 구속기소 됐다. 이에 따라 협회의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했을 것 같은데, 이후 위상 제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묵묵히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감사협회는 감사인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일을 하면 된다. 취임 이후 한 조직(행정공제회)의 감사로서, 감사인을 대표하는 협회장으로서 본연의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협회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둘씩 추진하니 자연스럽게 협회의 위상도 살아나고 있다. 주변에서도 '협회가 많이 변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앞으로도 한눈팔지 않고 감사로서 해야 할 역할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 올해로 창립 47년을 맞았다. 성장을 거듭하며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한국감사협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펼쳐져야 한다고 보는가?
"감사협회의 브랜드 가치를 잘 활용해야 한다. 감사협회의 브랜드 가치가 상당히 높은 편이나 지금까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활용을 못 했다. 이 브랜드 가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감사인들의 전문성을 높이는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5월부터는 교육센터를 여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전문교육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외국의 선진 이론과 실무 등도 소개해 나가려 한다. 내부감사, 내부통제, 리스크 관리 등 전문 외국 서적을 번역하거나 소개해 국내 지식수준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고자 한다.
아울러 사회 공헌 활동으로, 기업의 건전한 성장에 일조하려 한다. 유관 협회나 기관과 다양한 협력을 통해 내부통제와 내부감사의 필요성을 인식시켜 조직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도울 예정이다. ‘내부통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노력도 기울이려 한다. 우리나라에선 내부통제 업무가 전문가 또는 감사인들이 수행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 오해는 개념에 대한 심각한 오해로 우리 감사인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CEO나 임원진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바로 잡아 건전한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데 역할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