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1년9개월 만에 기자회견
김 여사 관련 논란에 첫 '사과' 언급…특검법엔 반대
與 "솔직하고 진솔", 野 "공감할 수 없는 자화자찬"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22년 8월 취임 100일 이후 1년9개월 만이다. 윤 대통령은 질의응답만 70분을 넘게 소화하며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다. 총선 패배로 드러난 민심에는 자세를 한껏 낮췄고,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사과'라는 표현을 쓰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특검법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여사뿐만 아니라 해병대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에 관한 특검법에도 입장을 같이 했다. 특검이라는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여권은 난처할 법한 질문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답변을 이어간 점을 두고 솔직하면서도 진솔한 회견으로 평가했다. 반대로 야권은 쟁점 현안인 김 여사와 채상병 특검법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 尹대통령, 국민보고 '민생' 14차례 언급…野와 소통·협치 약속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벌였다. 기자회견은 이날 오전 11시40분까지 약 100분 동안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먼저 집무실에서 21분 동안 국민보고에 나섰다. 취재진의 질의응답에 앞서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 성과를 되돌아보고, 남은 임기 3년의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봄은 깊어지는데, 민생의 어려움은 쉬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며 "국민들의 안타까운 하소연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프고 큰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국민 여러분의 삶을 바꾸는 데는 저희의 힘과 노력이 아주 부족했다"면서 "저와 정부를 향한 질책과 꾸짖음도 겸허한 마음으로 더 새겨듣겠다"고 말했다.
국민과 야당과의 소통 및 협치 강화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민생을 위해 일을 더 잘하려면, 국회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여야 정당과 소통을 늘리고 민생 분야 협업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민은 중산층으로 올라서고 중산층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민 보고에서 '민생'을 14차례나 언급했다. 지난 2년 동안 강조했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은 한 차례에 그쳤다. 총선이 국민의힘 참패로 끝난 데 대해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컸다고 지적된 만큼, 기존의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 尹대통령 "현명하지 못한 처신"… 김건희 여사 의혹 첫 사과
윤 대통령은 국민보고를 마친 뒤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던 브리핑실로 내려와 질의응답에 나섰다. 질의응답은 약 73분 동안 이어졌다. 직전에 진행됐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33분)와 비교하면 40분 정도 늘었고, 질문도 12개에서 20개로 많아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들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서 사과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다른 현안과 관련해 '송구'나 '죄송' 등의 표현을 쓰며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사과라는 단어를 쓴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선 반대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특검이라고 하는 건 일단 정해진 검찰, 경찰, 공수처 이런 기관의 수사가 봐 주기나 부실 의혹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면서 "(이번 사안은) 특검의 본질이나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 정치 공세로, 진상을 가리기 위한 목적은 아니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도이치(모터스)니 하는 사건에 대한 특검 문제도 지난 정부에 2년 반 정도 저를 타깃으로 검찰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 정말 치열하게 수사했다"며 "그야말로 특검의 본질이나 제도 취지와는 맞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정치 공세, 정치 행위 아니냐는, 진상을 가리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사법기관의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국민 여러분께 수사 당국에서 상세하게 수사 경과와 결과를 설명할 텐데, 그걸 보고 만약 국민께서 '이건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먼저 특검을 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불화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 (이관섭 당시) 비서실장,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한 (당시) 위원장 이렇게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문제는 바로 풀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전 위원장과 20년 넘도록 교분을 맺어 왔다"며 "언제든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질의응답이 70분을 넘어가자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충분히 시간을 드리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이 정도로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손을 내저으면서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 與 "진솔하고 허심탄회", 野 "전향적 입장 변화 없어"
여야는 극과 극의 반응을 내놨다. 여권은 진솔한 회견이었다고 평가했지만, 야권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지난 2년간의 정책 과정과 성과를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했다.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모든 현안에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며 "민생의 어려움에 대한 송구한 마음을 직접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며 질책과 꾸짖음을 겸허한 마음을 새기겠다는 다짐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입장을 분명히 한 데 대해선 "서로 간 입장 차가 있는 여러 특검 등 사안을 두고는 특검의 본질과 취지를 강조하며 진상을 밝히기 위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와 함께 협조의 뜻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먹고사는 것이 협치'라는 윤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을 위한 '협치'에 정부·여당이 먼저 나서겠다"며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민생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낮은 자세로 소통하며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야당에선 비판이 이어졌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국민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자화자찬으로 채워졌다"며 "총선을 통해 민심의 회초리를 맞고도 고집을 부리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김 여사에 대한 특검법을 '정치 공세'라고 규정한 것을 두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한 대변인은 "김 여사가 불가침의 성역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고, 채상병 특검법에 부정적 의사를 표한 것에 대해선 "수개월째 제자리걸음인 수사기관의 수사를 믿고 지켜보자는 말로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고 말했다. 또한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관련해선 "대통령이 호주와의 국방 문제를 많이 강조하면서 이 전 장관이 적임자인 것처럼 말했는데 국민들이 얼마나 동의하겠느냐"며 "정말 이 전 장관 외에 적임자가 없었느냐"고 반문했다.
한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을 같이 논의할 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했는지 근본적 회의감이 든다"며 "대통령의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지적했다.
주이삭 개혁신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국민은 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상태인데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메시지를 선제적으로 내놓지 않았다"며 "의대 증원, 채상병 특검 등 대통령의 전향적 입장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부족함을 알 수 있는 행사였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지지율 위기 때마다 액션을 통해 반등을 꾀했지만 더 이상 기대가 어려워 보인다"며 "대통령의 현안에 대한 전향적 입장 변화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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