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거북: 그러니까 많은 곡이 C장조 같은 것으로 돼 있다는 건 알지?
아킬레스: 그런 용어를 전에 들어본 적 있어. 그러면 거기서는 C가 종지를 원하는 음이라는 뜻인가?
거북: 그래. C는 이를테면 야구의 홈베이스 같은 셈이지. 통상적인 용어로는 으뜸음이라고 해.
아킬레스: 그렇다면 결국 그 으뜸음으로 되돌아오려고 으뜸음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도망쳐?
거북: 맞았어. 작품이 전개되는 동안 그 으뜸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애매한 화음과 멜로디가 사용되지. 그래서 점점 긴장이 높아지면 그 으뜸음을 다시 듣기 위해 되돌아오려는 욕구가 강해지는 거야.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 중에서>
바흐의 음악을 두고 논쟁하는 둘의 대화에서 핵심은 으뜸음의 역할이다. 후렴구에서 음악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곡 끝에 으뜸음이 나오면 모든 긴장이 해소된다. 클래식, 발라드, 댄스, 팝송 등 장르 불문하고 대부분 곡은 으뜸음으로 끝난다.
우리는 종결음을 듣기도 전에 그 음이 무엇인지 알고 기다린다. 자주 듣는 음악이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는 현상도 마지막 음이 주는 쾌감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구성도 이와 통한다. 영화 중후반부에 인물들 간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다가 막바지에는 영화 시작 이전의 감정 상태, 즉 원점으로 회귀한다.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유례없는 갈등 상황을 맞게 됐다. 지난 7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사상 첫 총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지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한국 사람들 상당수가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까닭이다.
메모리반도체는 500~600개 이상의 공정을 거쳐 완제품이 된다. 각 공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에 라인이 멈추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 메모리 기업은 아니지만 2021년 대만 TSMC는 6시간 동안의 정전으로 400억원 정도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전삼노가 생산 차질을 목적으로 빗속에서 총파업 결의 대회를 했던 상황을 보면 그들이 격노에 휩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줬음이 틀림없다.
다행스럽게도 노조는 동력을 잃고 있다. 파업 첫날이었던 지난달 8일 결의대회에 모인 참가자들은 노조 추산 4000~5000명, 경찰 추산 3000명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11일 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은 350여명, 12일 집회에서는 200여명이 모이는 데 그쳤다(노조 추산). 이는 삼성전자가 충분히 내부 성찰을 할 수 있는, 아직 건강한 집단이라는 방증이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 뒤 개운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안정된 상태로 회귀하려는 성질이 있음을 보여준다. 오래 지속되는 갈등은 위험하다. 음악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현재 삼성전자가 굴곡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삼노는 지난 5일 파업 종료 후 현업에 복귀했으나 노조는 부분 파업(게릴라식 파업)을 통한 '장기전'을 예고해 갈등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인간은 진노의 불길 속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법이다. 인간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근본은 평정한 상태에 있다. 노조가 마음을 돌이켜 갈등이 원만히 봉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