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1939년 개봉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는 기괴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을 갖고 싶은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 등 모두 콤플렉스로 가득 찬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결함을 치유할 수 있는 마법사를 찾아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결말에서 이들은 가짜 마법사의 몇 마디 말로 간단히 치유된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세계 최정상에 올라선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그 중 한 가지를 콤플렉스와 연관시켜 생각한다. '서구는 세계의 중심이고 한국은 주변부'라는 오래된 열등의식이다. 주류에 들어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긴박함이 전자산업에서 놀라운 발전을 낳게 했다.
'첨단 기술에서만큼은 일본에 뒤져선 안된다'는 생각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광물자원이 척박한 우리로선 일본을 앞서는 일이 더욱 절박했을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 만난 고령의 한국인 택시운전사는 CES를 보면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1979년 도미했다는 그는 여러 회사에 몸담으면서 CES의 전신인 컴덱스(COMDEX) 시절부터 우리나라 기업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30여년전 수십개에 불과했던 행사 참가 한국기업이 이제는 600개 가까이 된다며 한국과 일본간 전세가 완전히 뒤집혀졌다고 했다.
오래 전 이 행사는 우리나라 기업에 중요도가 오늘날만큼 높지 않아 일부 임원들만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일정 마지막에 그랜드캐니언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차·부장급들도 라스베이거스에 오기 시작하더니 오늘날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이 최대 참가국 타이틀을 갖게 됐다.
현지시간 7일 찾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내 파나소닉 전시장은 파티가 끝난 집처럼 공허했다. 파나소닉의 전신인 마쓰시다전기를 창업한 인물이자 일본에서 최고의 경영자로 평가받는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되살아나 이를 봤다면 무엇을 느꼈을까. 지나간 시간에서 인생무상을 절절히 느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간 삼성전자의 전시장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일부 참관객 사이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보여줄 것이 없어 연결성과 고객경험을 내세웠다는 혹독한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일본 반도체 패전'을 집필한 유노가미 다카시는 1990년부터 시작된 일본 반도체 몰락의 원인을 과잉 기술과 과잉 품질에서 찾았다. 일본이 만드는 반도체가 실생활과 유리된 채 지나친 고품질화를 추구하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이 병들게 됐다는 것이다.
인간 삶을 도외시한 기술은 결국 시장에서 사장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번 CES에서 던진 화두는 하나의 전환점이다. 4차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삶이 바뀌고, 변화된 삶이 다시 기술 흐름을 바꿔나가며 만들어지는 공진화 현상이다. 인간과 시스템이 새로운 계(界)를 형성한다.
혁신은 인간 삶과 동떨어진 것일 수 없다. 기술이 삶과 유리돼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만 쫓는다면 CES에서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만 받을 뿐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스스로 치유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실패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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