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안병용 기자] SK가 기업경영과 이윤창출의 ‘판’을 바꾸는 데 열성이다. 지난 2016년 최태원 회장이 기업의 돌연사(Sudden Death) 가능성을 경고하며 ‘딥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를 주문한 뒤 나타난 SK의 경영 화두는 ‘사회적 가치’와 ‘행복 추구’로 압축된다. SK는 기업의 헌법 격인 정관에 ‘이윤 창출’을 지우면서까지 새로운 원칙을 경영의 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의 딥체인지는 내부에서부터 시작됐다. 많은 돈을 써서 근무 환경을 럭셔리하게 바꾼 것도 기업의 성장이 ‘직원의 행복’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어서다. 직원의 범위에는 모든 이해관계자(구성원‧주주‧고객‧사회)가 포함됐다. 그는 대기업 최초의 주4일제 시행으로 최고의 복지라는 휴식에 정점을 찍으며 직원들이 밥벌이의 행복을 느끼도록 한껏 배려했다.
‘행복 경영’은 새로운 질서로 이어졌다. 임직원의 연공서열과 직급이 파괴됐다. 계급장을 떼자 70년대생 사장과 80년대생 임원이 탄생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 집에 못가고 저녁 회식에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낡은 기업 문화는 절로 사라졌다. 딥체인지가 철없는 재벌의 허세라는 비아냥은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기업문화의 혁신이라는 칭찬으로 바뀌었다.
1998년 취임 당시 38세로 “총수가 너무 젊다”는 세간의 평을 들은 최 회장은 어느덧 환갑을 넘기며 노련한 경영인으로 탈바꿈했다. 이 기간 SK는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 집단 순위 2위(2021년 3분기 결산기준 공정자산 270조7470억원)로 올라섰다. 최 회장은 총수로 선임될 때 불과 34조원이었던 그룹 자산을 7.9배로 불리는 저력을 보이며 ‘재계 맏형’이라는 수식어가 단순히 세월의 흐름으로 얻어진 타이틀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재계 일각의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도 성장과 생존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풀어준 이 같은 성과는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 회장이 진두지휘한 SK 사업은 포트폴리오 시프트의 연속이다.
SK 역사에서 선견지명이 담긴 총수의 인수합병(M&A) 결단은 여럿 찾아볼 수 있다. PMI(인수 뒤 통합) 전략이 성공의 본질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결과다. 섬유회사 선경합섬(현 SK케미칼)으로 그룹의 기반을 다진 내수기업 SK는 유공(현 SK이노베이션), 현대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그룹의 선봉으로 내세운 뒤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중 최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 결정은 오늘날 수출형 기업 SK를 있게 한 일대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하이닉스는 단순한 수출 효자 역할을 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로 ‘SK=내수 기업’ 이미지를 불식시킨 일등공신이다.
SK는 2012년 하이닉스를 품에 안고 1년 만에 지주회사를 제외한 상장사 매출 중 수출액(76조7322억원)이 내수(71조1732억원)를 처음으로 뛰어넘으며 내수기업 꼬리표를 뗐다. 하이닉스는 2016년 누적 수출액 3000억달러 돌파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 SK가 한국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꾸준히 담당하는 데는 채권단 관리를 받던 부실기업 SK하이닉스를 그룹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품속에서 묵묵히 키운 최 회장의 뚝심을 빼놓을 수 없는 셈이다.
최 회장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한번 M&A로 돌파구를 찾는다. 그는 배터리(B)·바이오(B)·반도체(C) 분야에 집중 투자 중이다. 이른바 BBC로 불리는 이들 분야에 2017년부터 5년간 글로벌 투자금 48조원 중 약 80%인 38조원을 투입했다. 배터리 투자가 19조원 규모로 가장 크다. 이어 반도체 17조원, 바이오 2조원으로 배분됐다.
최 회장은 바이오 부문을 제2의 하이닉스로 키울 태세다. 2018년 미국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의약품 생산법인 세 곳(SK바이오텍,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을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하는 등 규모를 계속 키우는 데 여념이 없다.
기업 경영하기에도 정신없는 그는 2021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라는 낯선 자리에 올랐다.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경제단체장이 되며 그는 재계의 얼굴이 됐다. 하지만 경제단체장은 누가 되든 간에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반대급부는 만만치 않다. 재계와 정부의 가교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직무유기로 된서리 맞기 십상이다.
회원사만 18만에 달하는 대·중견·중소 기업을 아우르는 자리에 선 최 회장은 동반성장을 해결할 해답을 향해 해법을 탐색했다. 5000만 집단 지성을 활용한 그의 아이디어는 ‘국가발전 프로젝트’라는 창업 오디션으로 발전했다. SK 직원들은 낯설지 않다. 최 회장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회사를 해마다 발굴해 포상금을 주는 방식을 차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곳에 인센티브를 주는 최 회장의 기업 경영 방식은 대한상의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국민이 편안한 나라를 만들 아이디어가 이익 추구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 문제를 푸는 거름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물을 주겠다는 생각이다.
불확실성을 안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최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SK가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는 근간이 됐다. 과감한 M&A를 기반으로 한 승부사적 기질과 사회적 가치를 주창한 뚝심 있는 경영철학은 2006년 이후 16년간 이어진 ‘재계 빅4’ 구도에 결국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SK의 경영 혁신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최태원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대한상의는 또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이는 오늘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탐구 중인 최 회장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