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재계 빅5 질서가 12년 만에 깨졌다. SK그룹이 2위로 우뚝 올라서면서다. 만년 3등의 결정적인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최태원 회장의 승부수와 핵심 계열사 SK하이닉스의 저력이 첫 손에 꼽힌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의 자산총액은 291조9690억원이다. 2005년부터 17년간 재계 2위를 유지해온 현대자동차그룹(257조8450억원)을 34조원 차이로 앞섰다.
2006년 이후 3위 자리에 머무른 지 16년 만에 한 단계 상승한 역전극이다. 삼성-현대차-SK-LG-롯데 순으로 이어지던 상위 5개 기업집단 내 순위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깨진 드라마다. 내년 창업 70주년을 앞둔 SK로선 의미 있는 선물을 받은 셈이다.
최 회장은 19년 만에 다시 ‘성공한 2인자’의 길을 걷는다. 2003년 3위로 현대차를 한 단계 앞섰다가 다음 해 재역전 당한 아픔을 말끔히 씻어냈다. 1998년 총수로 선임될 때 불과 34조원이었던 그룹 자산을 24년 만에 8.5배로 불리며 경영 능력의 절정기에 들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 풍랑 속에서 SK 경영의 키를 잡았던 38세 초보 경영인이 어느덧 창업회장 최종건‧선대회장 최종현이 남겨준 유산을 훌쩍 뛰어넘은 어닝 서프라이즈다.
최 회장의 경영 전략은 ‘딥 체인지’(근본적 혁신)로 설명된다. 그는 지난 2016년 기업의 돌연사(Sudden Death) 가능성을 경고하며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주문했다. ‘ESG 전도사’로 불리게 된 시작점이다. SK가 해상풍력발전과 폐기물처리 등 친환경에너지 회사 설립・인수에 주력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때부터다.
기업의 헌법 격인 정관에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이윤 창출’을 지우면서까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그의 혁신에 ‘허세’라는 비아냥도 나왔지만, 굴하지 않았던 최 회장의 승부수는 결과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경영을 주도한 계열사 SK(주)‧SK E&S‧SKC‧SK케미칼의 자산은 2016년 말 31조에서 5년 뒤 16조원이 늘었고, 같은 기간 170조였던 그룹의 자산은 120조원 이상 불어났다.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만한 분야에 과감히 투자를 단행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한 승부수도 적중했다. 2012년 뚝심 있게 밀어붙였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가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반도체 전문성이 없었던 데다, 채권단 관리를 받는 부실기업을 왜 인수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최 회장은 미래 먹거리로 확신하고 내부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하이닉스 인수 결정은 SK가 내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일대 반전을 이끌어냈다. 인수금 3조4267억원의 하이닉스는 시가총액 80조원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SK를 재계 2위로 끌어올린 데도 하이닉스의 공이 컸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SK 총자산 증가액 52조4390억원 중 40%(20조900억원)를 담당했다. 올 1분기에도 매출 12조1557억원으로 1분기 기준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당분간 SK의 2위 질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돈이 몰리고 있어서다. 연이은 대어급 기업공개(IPO)가 경영 계획표에 포함돼 있다. 상장을 앞둔 SK쉴더스, SK에코플랜트, 원스토어 등이 SK의 기업 가치를 더욱 키울 주축이다. SK의 확장세는 뚜렷하다. 계열사 숫자가 176개로 대기업 집단에서 가장 많다.
가능성을 성공으로 바꾼 최 회장의 시선은 여전히 미래로 향한다. 그는 SK가 재계 2위로 오른 소식이 전해진 27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만나 SK에 창조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최 회장은 “창조성의 원천으로서의 자유와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 변화를 수용해 기회를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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