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재계에 3세 경영 바람이 분다. 총수 일가의 3세들이 정기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이사진에 속속 합류했다. 그룹 장악력을 높여 경영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는 한동안 전문경영인들이 늘어났던 시대적 상황과 배치되는 모습이다.
25일 현재 그룹 내 경영 승계에 탄력이 붙은 곳은 효성과 한화, SK, 현대 등이다.
먼저 지난 17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효성티앤씨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조 회장은 부친 조석래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뒤, 그간 지주사인 효성에서만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조 회장은 스판덱스 점유율 세계 1위 기업인 효성티앤씨의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되면서 그룹의 책임경영뿐만 아니라 핵심 계열사에도 전폭적인 투자가 가능해졌다. 조 회장의 친동생인 조현상 부회장 역시 타이어코드 세계 1위인 효성첨단소재의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리며 그룹 장악력을 넓혔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에서는 정기선 체제가 닻을 올렸다. 현대가(家) 3세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한국조선해양 사장은 지난 22일 정기 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정식 선임됐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의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다. 현대중공업 50주년에 정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나간 50년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준 이사장 등이 이끌고 왔다면 미래 50년은 정 사장이 기틀을 다진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 역시 “정주영 창업주의 창업적 예지를 본받아 한다”며 현대 일가의 ‘경영 DNA’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한화도 3세 경영에 속도를 낸다. (주)한화는 오는 29일 열릴 정기 주총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한다. 김 사장은 김 회장의 유력한 후계자다. 태양광과 우주항공, 방위산업 등 한화의 미래 사업은 모두 그의 손에서 키워지고 있다.
2020년 3월 한화솔루션 사내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2021년 3월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내이사를 맡는 등 매년 그룹 장악력이 커지는 모양새다. 한화의 우주사업 종합상황실인 ‘스페이스허브’도 김 사장이 진두지휘 중이다.
SK에선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사업총괄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든다. SK네트웍스는 오는 29일 정기 주총에서 최 사업총괄을 사내이사로 선임한다. 최 총괄은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손자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조카다.
최 전 회장은 지난해 횡령·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회장직을 사임해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재계에선 최 총괄이 사내이사 선임 이후 SK네트웍스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본다.
이처럼 오너 일가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상황은 최근 10년새 국내 대기업 대표이사 가운데 전문경영인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2∼2022년 국내 500대 기업 중 조사가 가능한 411개 기업의 대표이사 총 563명 중 오너 일가 출신은 16%에 불과하다.
반면 전문경영인 출신은 84%다. 재계 1위 삼성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회장직에 오른 인물은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을 비롯해 8명(삼성전자 종합기술원 권오현, 삼성전자·삼성전기 강진구, 삼성종합건설 박기석, 삼성증권 이수빈, 삼성그룹 미주본사 김광호, 삼성종합기술원 임관, 삼성물산 현명관)에 달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너 3세들이 아무래도 경영 경험이 부족한 만큼, 전문경영인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세대적으로 과도기를 거치며 나온 현상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