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국정농단 사태로 문재인 정부에서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윤석열 정부에서 잇따라 행사를 주최하며 재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등 꽃길을 걷는 모습이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오는 20~23일 제주도에서 ‘CEO 제주하계포럼’을 개최한다. 연사에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포함됐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김경훈 구글코리아 대표, 조웅기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이석우 두나무 대표 등이 나서는 가운데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도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탈퇴했던 4대 그룹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위상 회복의 한 단면으로 여겨진다.
전경련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굵직한 행사를 잇달아 개최하고 있다. 지난 3월21일 당시 윤석열 당선자로부터 경제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에 1순위로 초청받은 이후 힘을 얻었다. 지난 정부에서 줄곧 패싱 당하는 등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은 것과는 180도 다르다.
5월에 들어서는 이례적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은 경제단체 초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같은 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이후 가장 먼저 ‘경제안보TF팀’을 구성한다고 밝히며 재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윤석열 정부의 민간 대미 카운트파트너를 자처한 것이다.
7월4일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함께 개최한 제29회 한일재계회의도 큰 관심을 끌었다. 3년 만에 열린 한일재계회의에 4대 그룹 사장들이 이례적으로 대거 참석하며 회원사 복귀가 논의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튿날인 5일 개최한 ‘신산업 글로벌 선두를 위한 정책 토론회’도 주목할 만한 행보다. 공동 주최 측이 여당인 국민의힘이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도 철저히 패싱 당하며 정책토론회를 열지 못했었다.
하반기에도 전경련은 국제 행사를 적극 개최할 것으로 전해졌다. 9~12월에 걸쳐 한-캐나다 재계회의, 한-미 재계회의, 한-호주 재계회의 등이 예정돼 있다.
보도자료 내는 데도 여념 없다. 한-미 정상회담(5월20~22일) 뒤에는 불과 이틀 만에 ‘국민의 75%가 회담에 긍정적’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이 아닌 곳이 발 빠른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는 건 이례적이다.
6월29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620원으로 5% 인상하기로 결정하자, 다음날 전경련은 ‘OECD 국가 가운데 3위로 높다’며 유감을 표했다. 7월7일엔 우리나라의 대기업 경제력 집중도가 OECD 회원국 중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계의 여론 주도권을 쥐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전경련이 그간 잃어버렸던 역할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할수록 재계 맏형 자리를 놓고 대한상공회의소와의 치열한 경쟁 구도는 불가피하다.
실제 대한상의는 경제단체장 간담회, 해외순방 일정 등 오랫동안 재계와 정부의 연락책 역할을 해왔던 전경련이 패싱 당하는 동안 수년간 역할을 대신해 왔다. 이에 따라 순수 민간단체인 전경련과 법정 경제단체인 대한상의는 독자적으로 벌이는 사업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서로 간의 영역이 사라지는 모양새였다.
최근 경영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기업가정신’이 한 예다. 대한상의가 지난 5월 주최한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에는 4대그룹 모두 참석하며 전경련의 신경을 건드리기도 했다. 기업가정신은 이미 전경련의 1996년 기업윤리헌장 제정 당시에 담겼던 내용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이 재벌이익 대변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활동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