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씨알도 안 먹힌다”
22일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계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위상을 이렇게 평가했다.
조직의 힘은 조직원에서 나온다. 경총의 조직력은 주요 경쟁 경제단체에 비해 아쉽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5월 현재 회원사 약 500여 곳 대부분이 대기업으로 구성돼 있지만, 경총은 회원사 4253곳 중 81.2%(3452개사)가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다.
4차 산업을 주도하는 IT업종의 인사들이 경총을 외면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8만 회원사를 아우르는 대한상공회의소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핀테크와 스타트업, 게임 관련 산업 변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IT기업 인사들이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반면 경총 수뇌부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과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등 전통 주력 IT산업 인사 외 빅테크 기업 인물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재계 일각에서는 손경식 회장이 뚜렷한 성과도 없이 연임을 하고 있는 데서 경총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기도 한다. 손 회장은 2018년부터 3연임 중이다.
우선 재계에 불리한 정부 정책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다는 평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재계 맏형인 손 회장이 가장 앞장서서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어 지난 1월27일부터 시행 중이다.
또 "민간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필사적으로 막아섰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역시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국제노동기구(ILO) 관련법 등의 입법 과정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손 회장의 일방적인 통합 주장도 경총의 위상 추락에 한 몫 한다는 지적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와 올해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들이 잇달아 입법되자 경총과 전경련의 통합론을 꺼내들었다. 전경련을 흡수해 국정농단 사태 이후 최대 경제단체로 떠오른 대한상의와 맞먹는 몸집을 키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하지만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6번째 회장직을 맡고, 전경련 내부에서도 강한 반발이 나오면서 통합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경총 내부에서는 국정농단 사태로 생긴 정경유착 이미지를 아직 완전히 쇄신하지 못한 전경련과의 통합 추진을 이해하지 못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재계는 시기가 문제일 뿐 손 회장이 통합론 카드를 언제든지 다시 꺼내들 것으로 본다.
재원조달 여건이 열악한 경총은 회원사 회비로만 대부분 운영 예산을 충당한다. 반면 전경련은 회비뿐만 아니라 임대료 등을 통해 수익(2021년 사업보고서 기준 회비 97억‧임대료 317억)을 얻는다. 법정단체로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와 함께 인증 사업 등을 진행하는 대한상의와 비교하면 경총의 재정자립도는 더욱 초라해진다.
본래의 설립취지였던 노사문제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종합경제단체로의 전환에도 실패한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의 힘은 여론에 있다”면서 “경총이 주요 노동이슈에서 별다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면 전경련과 대한상의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