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지현 기자] 집주인이 '자신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세입자를 내보낸 뒤 다른 사람에게 아파트를 재임대한 경우, 이전 세입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세입자 A씨가 집주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먼저 계약 갱신 거절 의사를 밝힌 경우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손해배상 의무를 진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출이 어려웠던 사정은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서울 거주민인 A씨는 지난 2019년 4월 집주인 B씨와 보증금 6억5000만원에 아파트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계약 만료일을 3개월여 앞둔 2021년 1월 B씨는 A씨에게 자신이 아파트에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전세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다.

A씨는 집주인의 말을 믿고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계약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새 전셋집을 구해 이사를 나갔다. 

그러나 이사를 마친 A씨가 이후 주민센터를 방문해 확정일자 부여 현황 등을 조회한 결과, B씨가 이사한 지 불과 사흘 뒤인 지난해 4월 22일 이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한 것을 확인했다.

B씨가 새로운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은 11억원으로 A씨가 납부한 금액(6억5000만원)보다 4억5000만원 많았다. 만약 A씨와 계약을 갱신했다면 B씨가 받을 수 있는 보증금은 원금으로부터 최대 5% 인상된 6억8250만원이다.

B씨가 실거주 약속을 어긴 것을 알게 된 A씨는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A씨의 주장을 인정, B씨가 A씨에게 22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B씨가 보증금 차액(4억5000만원)에 법정이율(2.5%)과 임대 기간 2년을 적용해 월세로 환산한 금액이다.

지난 2020년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집주인은 자신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나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

집주인 B씨는 "A씨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사실조차 없다"며 갱신 거절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집주인이 구체적인 사유를 들어 계약갱신을 거절할 것임을 확실하게 밝힌 상황에서까지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는 또 "자신이 직접 아파트에 거주할 생각이었으나 정부 정책 변화로 대출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게 됐다"며 이같은 사정이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법원이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임차인이 2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체한 경우 △임차인이 부정한 방법으로 임차한 경우 △임대인의 동의없이 목적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전대한 경우 △임차인이 임차한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파손한 경우 등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