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부터 '금리 인하, 취약층 재원' 등 지원책 발표 러시
윤 대통령 '은행, 공공재 성격' 발언 이후 공공역할 압박 더해
'돈 잔치' 원인, 제대로 봐야…"부정 시각에 신사업 진출 막막"
[데일리한국 정우교 기자] 은행들이 최근 앞다퉈 금리를 내리거나 사회공헌 계획을 내놓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요구하는 압박이 커진 탓인데 현장에선 오히려 피로감만 쌓이고 있다는 분위기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작년 연말부터 △중도상환수수료 한시 면제 △금리 인하 △고정금리 특별대출 공급 △연체대출금리 경감 △취약계층 지원 재원 공동 조성(5000억원) △취약계층에 10조+α 공급 등 다양한 지원책을 발표하고 있다.
은행이 중도상환수수료를 안 받거나 금리를 인하하는 이유는 대출자의 부담을 덜기 위함이다. 현재는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가계·기업의 상환여력이 떨어져 있다. 실제로 최근 실적을 발표한 은행 10곳(신한·국민·우리·하나·기업·부산·대구·전북·광주·카카오)의 작년 4분기 연체율이 전년에 비해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연체율이 이대로 계속 오르면 은행도 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이에 이자를 낮춰 대출자의 상환여력을 개선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회적 책임도 함께 이행하려는 것이다. 은행연합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권은 지난 2019년 1조1359억원, 2020년 1조929억원, 2021년 1조617억원을 사회공헌에 써왔다.
다만 최근엔 정부·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인해 은행의 금리인하, 사회공헌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은행은 공공재 성격이 있다"라고 발언한 후 은행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바라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달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공공재'를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은행들이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린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4대 은행(신한·국민·우리·하나)만 놓고 보면 지난해 순익은 12조원을 넘는다. 높은 금리로 이자이익이 불어난 덕택이다.
윤 대통령은 임금·성과급 인상률도 오를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을 들지 않게끔 상생금융 대책을 마련하라"고 금융위원회(금융위)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이복현 원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은행의 영업방식을 '약탈적' '독과점'이라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엔 김수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금융권 청년 일자리 간담회'에서 청년 일자리 활성화에 동참해주길 당부하자, 은행들은 곧바로 상반기 2288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반기까지 합치면 약 3700명을 채용할 예정으로, 4대 은행(신한·국민·우리·하나)에서만 1000여명을 뽑는다.
은행권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압박에 피로도만 높아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은행이 공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건 맞다"라면서도 "다만 은행은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하는 주식회사의 성격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배제하고 몰아세우는데 고충이 크다. 지원책을 마련해도 (위에선)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은행이 최대 실적을 거둔 원인을 되짚어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고금리는 인플레이션 장기화, 기준금리 인상, 자금조달비용 상승, 자금시장 경색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 작용해 낳은 결과다. 인플레이션이 왜 계속되고 있고, 은행의 조달비용이 상승한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영업방식에 손을 대야 한다는 이야기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은행의 '돈잔치' 원인은 금융위의 오락가락 결정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은행들은 지난해 정책적 지시에 따라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예대금리차를 축소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인상하고 은행채도 발행했다"며 "이렇게 되니 시중금리가 은행으로 쏠렸고, 회사채 시장엔 자금경색이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예금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렸다"며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예금금리 인상 자제령이 내려지자 예대마진은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은행들은 이자장사를 하는 꼴이 됐다"라고 비판했다.
은행들의 완전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금감원의 계획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의 과점체제를 깨겠다는 것으로,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완전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기존은행이 실적을 낸 것을 두고도 정부·금융당국이 도끼눈을 뜨는데 경쟁에 뛰어들 새 주자가 쉽게 나타나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한 은행의 관계자는 "현재 은행들은 이자이익을 관리하고, 비이자이익을 키우기 위해 신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금융지주도 이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신사업에서 자리를 잡고 이익을 내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라며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비은행 진출에 속도를 더 내야 하지만 은행의 이익창출에 부정적인 시선이 쏠리는 현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