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전문가들 "정부도 뒷짐져선 안돼...EU우려 불식시켜야"
[데일리한국 박현영 기자] EU 경쟁당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긴 했지만, 국내 항공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양사 기업결합 시 유럽 일부 노선에서 경쟁제한 가능성이 있다는 중간심사보고서(SO)를 발표했다.
EU 경쟁당국은 “양사 합병 시 한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간 4개 노선에서 여객과 화물 운송시장에서 가격 상승과 서비스 질 하락이 우려된다”면서 대한항공의 독점을 경계했다.
대한항공은 이번 EU 경쟁당국의 중간심사보고서 발표에 대해 통상적인 절차로 보고, 경쟁당국의 우려 사항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항공전문가들 역시 이번 보고서가 대한항공이 EU경쟁당국이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절차상 발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한항공이 홀로 EU 경쟁당국과 협상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으니,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한항공이 EU 경쟁당국의 조건에 맞춰주면 바로 심사 허가가 나올 수 있지만, 회사 실익을 따져서 신중하게 진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대한항공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선이 있는데, EU에서 강제로 포기를 강요한다면 결국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 EU의 기업결합 불허 결정으로 무산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도 무리한 조건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윤교수는 설명했다.
당시 EU경쟁당국은 기업결합 조건으로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의 생산설비 절반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EU의 조건이 양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해 합병을 포기했다.
윤 교수는 “기업결합 허가가 나오려면 대한항공이 협상을 잘해야 하지만,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장거리노선 독점 등을 우려하고 있는 EU 경쟁당국에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려를 해소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기업결합과 관련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와의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는 영국 등 해외 대상국에 너무 많은 슬롯을 반환해 국부 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원 장관은 "결합심사 과정에서의 손실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대한항공이 실질적 경쟁 역량이 있는 노선을 제시하기 위해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엄격한 시선으로 보려 한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또 "대한항공이 합병 심사를 통과하고 나서 입장이 돌변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가 계속 길어지는 이유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대한항공이 홀로 경쟁당국과 협상을 하다보니 당초 1년안에 해결돼야 하는 허가가 3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일각에선 이렇게 어려워진 기업결합 심사과정이 우리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 때문이리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공정위는 조건부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공항 슬롯 반납과 운수권 재배분 등을 결정했다. 첫 단추에 해당하는 우리 공정위의 기업결합 조건이 엄정하게 나온 만큼, 경쟁당국들도 대한항공에 보다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항공산업과 국내 기업 경쟁력을 고려해 판단해야 하는 공정위가 경쟁당국만큼 과한 조건을 내걸었다”면서 “그 결과 이어진 경쟁당국 심사에선 우리 공정위보다 차곡차곡 조건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아직 심사 중인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도 현재 EU 경쟁당국의 심사 과정을 지켜보고 조건을 정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는 대한항공은 물론 우리 항공산업에 출혈로 이어지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어느정도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대한항공 입장에선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이 이득이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하는 것은 경쟁사가 줄어드는 것이기에 시장지배력 등의 면에 있어서 결국 대한항공에 많은 이득이 될 것”이라면서 “양보해야하는 노선이나 슬롯 등은 각국, 경쟁사들의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한항공은 다시 새로 꾸려나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이어 “대한항공 입장에선 이미 허가가 났던 영국 노선에서도 크게 양보를 했는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 황금 노선에서도 양보를 해야하는 것에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면서도 “단기적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향후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