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악화로 프리미엄 라인 집중
'혜자카드' 사라져 소비자는 불만
실적 떨어지며 '선택과 집중' 가속화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조달금리 인상·지속적인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약화된 카드사들이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영업 효율화에 나서겠다는 경영전략이지만 프리미엄 전략에 밀려 혜택 좋은 카드의 단종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불편하기만 하다.
특히 '혜자카드'로 불렸던 카드들이 빠르게 단종되면서 구매력이 큰 VIP 등에 혜택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사들은 실적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해명했지만 이같은 현상은 하반기에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8일 신용카드 플랫폼 카드고릴라에 따르면 올 상반기 출시된 주요 신용카드 59종의 연회비 평균은 8만3453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출시된 주요 신용카드 76종의 연회비 평균인 3만8171원 대비 119% 증가한 수치다.
평균 연회비가 급격하게 올라간 이유는 카드사들의 연이은 프리미엄 카드 출시 때문이다. 연회비 10만원 이상인 신규 신용카드는 지난해 7종에 불과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10종이 출시됐다. 또 지난해 프리미엄 신상카드의 연회비 분포가 주로 10만~50만원선이었다면 올해 상반기는 20만~80만원 수준까지 올라오는 등 평균 연회비도 높아졌다.
올해 초 KB국민카드는 신규 프리미엄 라인업 '헤리티지(HERITAGE)'를 새롭게 출시하면서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지난 6월 출시된 '헤리티지 익스클루시브(HERITAGE Exclusive)'의 경우 최상위 1% VVIP 고객을 겨냥한 상품으로 연회비만 200만원에 달한다.
이와 더불어 '액티브시니어(은퇴 후 시간·경제적 여유를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50대 이상의 인구)'를 겨냥한 '헤리티지 리저브(HERITAGE Reserve)' 역시 연회비가 80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카드로 인지도가 높다.
해당 카드들은 별도 자격 심사를 거쳐야 할 만큼 가입 절차가 까다로우며 골프팩 딜러버리 서비스부터 전세계 공항라운지 키 서비스 등 최상위 고객을 위한 혜택으로 무장했다.
이에 앞서 가장 높은 연회비를 자랑했던 '더 레드 스트라이프'를 선보인 바 있는 현대카드도 지난 5월부터 글로벌 프리미엄 카드 브랜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의 센츄리온 디자인 카드를 국내 독점 공급하고 있다. 연회비는 그린(10만원), 골드(30만원), 플래티넘(100만원) 등으로, 전 세계 공항 라운지와 호텔 멤버십 등을 누릴 수 있다.
고승훈 카드고릴라 대표는 "수익성 악화, 비용 절감 등의 이슈가 맞물리며, 카드사의 프리미엄카드 라인업 출시·리뉴얼이 당분간은 활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혜택 좋았던 서민들의 혜자카드는 사라져
프리미엄 카드는 늘고있는 반면 쉽게 가입할 수 있고 혜택도 많은 '혜자카드'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단종된 8개 카드사의 상품은 159개로, 지난 한 해 단종된 상품 수(116개)보다 43개 많다.
지난 5월에 단종된 신한카드의 '더 레이디 클래식'이 대표적이다. 해당 카드는 학원비 100만원당 5%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쌓아줘 맘카페 등에서 필수카드로 꼽혔지만 결국 단종됐다.
마트·홈쇼핑·온라인쇼핑몰 등에서 10% 할인 혜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KB국민카드의 '탄탄대로 올쇼핑 티타늄카드' 역시 지난 6월 16일부터 발급 중단됐다. 이밖에 롯데카드의 '인터파크·벨리곰 카드', 현대카드의 '제로 모바일 에디션2' 등 수많은 알짜 카드가 사라진 상태다.
카드사 관계자는 "신용카드 라인업은 언제든 변경될 수 있다"며 "단종이 예정되어 있던 카드들"이라고 밝혔다.
◇ '선택과 집중'에 아쉬운 건 소비자
카드사들의 '프리미엄' 전략은 업계 불황·조달금리 인상 등 업계 위기가 계속되면서 등장했다.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신용카드가 아닌 잠재 고객층의 경제력을 판단하고 수익성이 높은 고객들에게 혜택을 집중하겠다는 것. 돈 안 되는 상품을 과감히 정리한 카드사들은 악화된 수익성을 메우고 있다.
이러한 전략이 적중하면서 실제 카드사들의 실적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한, KB국민, 삼성, 현대, 롯데, 우리, 하나카드 등 7개 카드사의 연회비 수익은 3148억원이다. 지난해 1분기(2954억원) 대비 6.5% 증가한 수치다. 7개 카드사의 연회비 수익은 지난 2019년 1분기 2352억원에서 매년 증가해 4년간 33.8% 늘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카드 결제는 늘었지만 카드사들의 실적이 떨어진 것도 카드사들의 이같은 전략을 가속화 시킬 것으로 보인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개인카드 승인액은 237조7000억원, 승인 건수는 66억7000만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각각 5.1%, 7.1% 증가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매출 실적이 많은 소비자다 보니 그에 상응하는 부가 서비스를 많이 준다고 하더라고 매출로 이어지는 정도가 커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 중 하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혜자카드'가 사라지고 혜택을 받기 위해선 높은 연회비의 카드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드소비자들 사이에선 요즘 가장 좋은 카드는 옛날에 만든 카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하는 한 누리꾼은 "지금 사용하는 카드가 언제 단종될지 모른다"며 "필요한 혜택이 다른 카드로 옮겨지면 결국 카드를 쓰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선택과 집중'은 좋지만 일반 소비자를 잡을 수 있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카드사 관계자는 "다양한 이벤트로 한쪽에만 쏠리지 않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프리미엄' 라인 강화는 이러한 방안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