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정치 현안 언급 않는게 바람직"
국민의힘, '방탄 단식'으로 규정하며 비판
"비정한 정부" 野와 갈등의 골 깊어질 듯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대통령실은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국민의힘과 같이 아무런 반응을 비치지 않으면서 정부·여당과 야당 간 관계는 '악화일로'를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요청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치 현안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언급하지 않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 등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이날까지 벌써 13일째로, 민주당은 건강 상태가 극도로 악화한 점 등을 고려해 이 대표에게 단식 중단을 요청하고, 소환 조사를 이어가는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받는 이 대표는 지난 9일에 이어 이날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았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날 긴급 의원총회에서 "역대 야당 대표를 단식 중에 소환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오늘 단식 13일차를 맞아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 대표를) 또다시 추가 소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이 6번째 소환이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언론에 보도돼 확인된 압수수색만 376차례”며 “박근혜 국정농단 때 특검이 압수 수색을 한 것이 46회였다. 8배가 넘는 숫자”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단식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대통령실뿐만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단식을 사법리스크 방어용 '방탄 단식'으로 규정하며 조롱과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양향자 한국의희망 공동대표가 이 대표의 단식과 관련해 "여당이 나서야 할 때다. 당장 이 대표를 만나주길 바란다"고 촉구하자 "비공개 만남 제안에 아직 답변이 없고, 단식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 수사에 앞서 단식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민주투사 코스프레로 사법시스템을 모욕주는 것이 이 대표가 약속한 당당한 태도인가"라고 비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과 단식 중인 이 대표와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단식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 있어 굉장히 낯선 상황이다. 야당 대표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투쟁을 이어갔을 때 정부와 여당이 먼저 화합의 손길을 건넸던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19년 11월 당시 야당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 투쟁이다. 황 전 대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철회 등을 주장하며 8일 동안 단식에 나섰다. 당시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내 세월호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포함됐었다. 하지만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 이어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황 대표를 찾아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2018년 5월에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댓글 사건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에 나섰다. 그러자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에 이어 새로 취임한 홍영표 원내대표까지 김 원내대표를 찾아가 단식 투쟁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2016년 10월에는 여당 대표가 단식에 나서자 야당 대표가 이를 말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민주당 출신이었던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국정감사 보이콧 단식에 돌입하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 대표를 찾아가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정 의장도 입원 중이었던 이 대표의 문병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 밖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10월 단식을 13일 동안 이어간 결과 내각제를 저지하고, 지방자치제의 도입을 이뤄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5월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의 자유 등을 촉구하면서 23일 동안 단식에 돌입했다. 이에 전두환 정권은 권익현 여당 사무총장을 보내 단식 중단을 촉구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에서 풀렸다.
이처럼 정치인들의 단식은 그동안 목숨을 건 '승부수'로 여겨졌지만, 예상과 다른 대통령실과 여당의 반응에 이 대표의 무기한 단식은 출구를 잃은 모양새다. 다만 이 대표 측은 아직까지 단식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의 외면 속에도 이 대표가 단식을 이어가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는 분위기다. 김영진 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이 대표를 찾아와 이번 정부에서는 그런 게(만남 시도) 일절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참으로 비정한 정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