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이달 17일부터 22일까지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개최된 ‘서울 항공우주·방위사업 전시회(ADEX) 2023’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최신예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첫 시범비행을 선보이며 국내외 참관객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KF-21은 5분여 동안 진행되는 기동 시범을 통해 수평 급선회 기동, 배면비행 등으로 국산 전투기의 고기동성과 우수성을 과시했다. KF-21 시험비행이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항공기 ‘부활호’ 첫 비행으로부터 70년 만이다.
이번에 대중에 공개된 KF-21은 첨단 장비를 갖춘 한국형 4.5세대 전투기로 현재 국산화 비율은 70%에 육박, 지속적인 부품 국산화를 통해 이를 80% 이상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최고속력 시속 2200km(마하 1.81), 항속거리 2900㎞를 자랑하며 추후 스텔스 기능과 유·무인 전투비행체계 등을 더해 5세대 또는 6세대 전투기로의 개량을 목표로 한다.
KAI는 이번 전시회에서 KF-21 외에도 폴란드, 말레이시아 등으로 수출하는 FA-50 등 국산 전투기 역량을 과시하고 KF-21 무인기 복합편대와 LAH(소형무장헬기), MAH(상륙공격헬기) 등 유·무인 체계들이 연결되는 미래 공중전투체계 개념까지 제시했다.
KAI는 전투기 교체 수요가 있는 유럽 국가 등을 대상으로 FA-50과 KF-21 마케팅에 집중해왔다. FA-50은 지난 8월 폴란드 국군의날을 기념해 유럽 하늘에서 첫 비행을 선보이며 기존 주력 전투기인 미그-29 대체 기종으로 주목을 받았다.
FA-50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운용 중인 F-16과의 높은 호환성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KF-21도 FA-50과의 운용 호환성, 기종 전환 용이성이 높아 현지에서 차기 전투기로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KAI는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미국 고등훈련기 사업 수주까지 노리고 있다. 방산 최대 시장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미국 진출에 성공할 경우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전투기 기술력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한국형 전투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 국산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최첨단 기계·소재공학의 집합체인 만큼 기술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자체적인 항공엔진 개발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투기 엔진은 수톤 무게의 기체를 띄워 음속을 넘어서는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성능, 수십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 엔진의 고온을 견디는 소재기술 등이 요구되며 비행에 적합한 안정성을 까다롭게 평가하는 감항인증도 거쳐야 한다.
KF-21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라이선스 기술로 국내에서 면허생산 한 F414 엔진이 들어간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미국의 엔진이 들어가는 것으로 KF-21과 FA-50 수출을 위해서는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국내 업체가 쌓아온 조립·생산 경험은 우리 자체 엔진 기술 개발의 밑거름이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0여 년간 9800대 이상의 항공엔진을 생산한 경험을 갖고 있다. F-15K 전투기, T-50 고등훈련기 등 우리 공군의 주력 항공기 엔진과 한국형 헬기 ‘수리온’의 국산화 엔진을 생산하고 해군 군용 함정에 들어가는 LM2500 등의 가스터빈 엔진도 생산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5세대급 유·무인기용 엔진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미 가스터빈 엔진 분야의 핵심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 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GE와의 기술협약을 통해 엔진 부품 등의 국산화도 추진하고 있다.
앞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주관, 2029년까지 497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무인기용 ‘TIT 1800K급 터보팬 항공엔진 저압터빈 내열합금 및 코팅 기술’ 개발 과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3D프린팅 △일방향응고 정밀주조 △섭씨 1500도까지 상승하는 항공엔진 초고온부에 사용할 내열합금 등을 개발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무인 전투기 엔진 개발 역량은 유인 전투기 첨단 엔진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올해 1월부터는 1000마력급 무인기 엔진 핵심부품을 1000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장(長)수명 엔진 소재, 7월부터는 기존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전투기 엔진용 인코넬 718 소재 개발에 나서는 등 항공엔진 기술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서울 ADEX를 참관한 김동관 한화 부회장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투기 엔진을 생산해온 한화가 방산의 국가전략산업화에 기여하기 위해 항공기 엔진 개발에 적극 나서겠다”며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KAI는 이번 행사에서 항공소재개발연합의 국산화 개발 성과를 발표했다. 항공소재개발연합은 2019년 국내 항공우주산업 발전과 항공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협력체계 구축을 목표로 9개 기관의 참여로 출범, 현재 41개 산학연관이 참여하고 있다.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금속재, 복합재, 표준품 등 항공 소재부품 163종의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KF-21, FA-50, G280 주익 등에 국산 소재를 적용, 240억원 규모의 수입 대체 효과를 달성했다. 2030년까지는 잔여 대상품 700여종에 대한 국산화를 달성해 국내 항공소재 생태계 구축을 앞당길 방침이다.
전투기에 탑재되는 무기체계와 첨단장비도 국산 전투기 경쟁력에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행사에서 LIG넥스원은 항공탑재 무기체계와 레이더, KF-21의 무장인 장거리공대지유도탄(KALCM)과 KGGB(한국형 GPS 유도폭탄), FA-50 등에 장착·운용되는 AESA 레이더를 선보였다.
국방과학연구소 주도 아래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KALCM은 KF-21에 장착되는 최초의 장거리 순항 유도탄으로 일명 ‘보라매의 발톱’으로 불린다. 수백km 떨어진 핵심 표적을 정밀공격 할 수 있는 핵심무장이다. LIG넥스원이 개발해 2012년부터 전력화된 KGGB은 중거리 GPS 유도키트를 장착해 원거리 공격과 주·야간 전천후 정밀공격, GPS 교란 대응이 가능 ‘스마트 폭탄’ 무기체계다.
전투기의 교전 성능을 크게 향상시키는 AESA 레이더도 중요도가 높은 항공탑재 장비다. 현재 소수 해외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며 외산 AESA 레이더를 장착하면 제조국 기술 보호를 위해 레이더와 연동되는 핵심 임무·항전 장비와 무장을 패키지화할 수밖에 없어 국산 장비와의 연동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우리 군과 정부는 2006년부터 전투기용 AESA 레이더 국산화를 추진해왔으며 LIG넥스원은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아래 약 15년간 연구개발(R&D)을 통해 FA-50용 AESA 레이더 시제품을 만들었다. 약 850억원의 정부예산 투입으로 전투기용 AESA 레이더 핵심기술 응용연구 2건(2006~2013년), 시험개발 2건(2014~2021년)을 수행했으며 자체 투자(2021~2023년), KAI와의 협업 등이 이뤄졌다.
국내외에서 운용 중인 전투기용 AESA 레이더는 냉각 유체로 발열을 잡는 수랭식이지만 LIG넥스원이 공개한 ESR-500A는 경공격기 전용으로 공기만으로 냉각하도록 설계,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기존 기계식 레이더(MSA) 대비 다수표적 동시 탐지·추적 능력, 공중·지상 표적 동시추적 능력 등에서 월등한 전투력을 지원한다.
다만 국산 AESA 레이더의 전력화 완료를 위해서는 다양한 환경시험과 비행시험, 체계 적합성 시험, 감항인증 등을 거쳐야 한다. 김지찬 LIG넥스원 대표는 “FA-50 AESA 레이다 개발 업체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지만 개발 완료까지 적지 않은 숙제가 남아 있다”며 “남은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고 이를 통해 FA-50의 진정한 국산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서울 ADEX 개막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원조와 수입에 의존했던 나라가 이제는 최첨단 전투기를 만들어 수출하는 수준으로 도약했다”며 “앞으로 정부는 우리 방위산업과 항공우주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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